『도시락 전쟁』, 새턴은 잉여 게임기가 아니거든요?!

 도시락 전쟁 1 - 10점
 아사우라 지음, 시바노 카이토 그림, 구자용 옮김/학산문화사(단행본)

 가난한 고교생 사토 요우는 어느 날 문득 들어간 슈퍼에서 반값에 파는 도시락을 발견한다. 거기에 손을 뻗으려는 순간 그는 폭풍 같은 ‘무언가’에 휘말리고, 정신을 차려 보니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그곳은 반값 도시락을 둘러싸고 치열한 배틀 로열이 펼쳐지는 장소였던 것이다! 그 불가사의한 싸움에 매료된 사토는, 마침 그곳에 있던 동급생 오시로이 하나와 함께 반값 도시락의 쟁취를 꾀하지만, 갑자기 나타난 미녀 ‘빙결마녀’에게 무참히 패배한다. 그리고 그 미녀가 사토에게 전한 말은….


반값 도시락? 배가 불렀구나!


 본작 『도시락 전쟁』(원제 : 『ベン・トー』)은 집을 나와 기숙사에서 고교생활을 하는 주인공 사토 유우가, 우연한 계기로 반값 도시락을 둘러싼 배틀에 끼어들게 되면서 벌어지는 사건을 다룬 작품입니다.

 제대로 된 리뷰를 하기 전에 잠시, 사소한 원념을 토하고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이 작품을 접한 시기, 제 식단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밥]+[고추장]+[1000원에 11개 들이 오이고추 한 팩]. 한 끼에 오이고추 하나를 먹었으니까, 이 식단으로 11끼를 먹은 거지요. 하루에 2끼만 먹었으니까 5일 하고도 한 나절. 쌀값+부식비+요리비를 다 합쳐도, 확실히 290엔 이하입니다(..). 만화 『빈민의 식탁』을 보면서 '이 더러운 부르주아지 놈들'을 읊조릴 수 있는 사람이 바로 저입니다, 엣헴.
 그런 저의 눈으로 볼 때, 이 작품의 기초 설정이 마음에 들 리가 없습니다! 분명히 취사시설도 있는 기숙사니까, 조금만 신경 쓰면 제대로 된 음식을 만들어 먹을 수 있을 거란 말이에요. 어설프게 만들어 먹으면 사 먹는 것보다 비싸다는 사실에는 분명히 공감하지만(ㅠ_ㅠ)……. 그렇다 해도 반값 도시락을 사기 위해 배틀을 벌인다니!


실제적 가치와 지나친 열의의 갭에서 오는 코미디


 하지만 실제로 읽어본 작품은 뜻밖에도 상당히 재미있었습니다.
 반값 도시락을 노리고 모여든 '늑대'들, 개중에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유명한 강자(..)도 존재합니다. 주인공을 도시락 배틀의 세계로 인도하는 빙결마녀 유즈루이 센이나, 마도사라 불리는 카네시로 유우 등. 그런 강자들이 주인공의 재능을 인정한다거나(..), 그 성장에 감탄한다거나(..), 포섭하려 드는 등 배틀물 같은 전개가 펼쳐지지요. 반값 도시락인데……. 그거 집어먹겠다고 싸우는 건데……. 심지어 그렇게 싸울 때만 초인적 능력(..)이 발휘되는데……. ;;
 [병신 같지만 멋있어]라는 평가가 있었던 것 같은데, 실제로 그와 많이 비슷합니다. 정색하고 보면 그냥 이상한 거지만(..), 조금 마음을 풀어놓고 보면 나름 멋있어 하는 한편으로 키득키득 웃을 수 있지요.
 작품을 이끌어가는 양념 같은 것이라고 해야 겠지만, 주변 인물들도 꽤 유쾌합니다. 정신 차리고보니 듬직한 전우(..)가 되어 있었던 오시로이 하나 양의 801 망상이나, 그런 하나 양을 주인공이 자꾸 끌어내는 게 못 마땅한 시라우메 우메 양이 뿌려내는 백합분이 꽤 취향. (..)


흔한 경험에서 공감을 유도하는 작품


 다만 저런 갭에서 오는 코미디는 어느 정도 한계가 있습니다. 완전히 멋있는 이야기도 될 수 없고, 완전히 웃기는 이야기도 되기 어렵거든요. 작품을 읽으면서 저처럼 [이 부르주아지놈들!] 같은 감상을 느끼는 건 즐거운 일이 아니기도 하고. (..)
 그렇기 때문에 초반의 신선함이 넘어갈 때쯤, 작품은 슬슬 올바른 이야기를 꺼냅니다. [열심히 일한 후의 밥은 맛있다] 라거나, [성취감은 그 노력의 정도에 비례한다] 같은 이야기. 이것이 도시락 배틀에 한정되면 아무리 올바른 말이라고 해도 '...' 하는 느낌이 듭니다만, 본작에서는 그런 위험을 피하기 위해 은근 슬쩍 다른 존재를 끼워넣고 있습니다.
 바로 '게임'입니다.

 실제로 게임은 [실제적 가치는 거의 없는데, 하는 사람들만 열내는] 대표적인 상징물 중 하나지요. 프로 게이머의 등장이라든가, 황금 알을 낳는 게임산업(..)이 부각되며 위상이 많이 올라가긴 했습니다만, 여전히 [게임중독]과 [범죄의 원흉] 등으로 취급되고 있지요. 도시락 전쟁의 무익함과 즐거움(..)을 떠올리게 하는 존재라 할 수 있고, 독자들에게 있어서도 상당히 익숙합니다. 게임은 무의미한 짓이야! 라고 하면 화낼 사람이 많을 정도로요.
 작중 내용을 조금 언급하게 되겠습니다만, 주인공의 부모님은 두 분 다 게임광입니다. 그것도 아버지는 새턴(..), 어머니는 [게임기는 역시 자작이어야지?] 하는 괴인(..). 소프트 구입 비용 때문에 아들의 애절한 구원요청을 무시하거나(..), 게임을 하느라 화장실도 가지 않고 있다가 그만 사고를 저지를 정도로(..).
  특히 아버지가 새턴 매니아인 것이 매우 의미심장한데요, 비디오 게임계에서 세가 팬은 [높은 프라이드(세가의 기술력은 세계 제이이이이일!)]와 함께 [만년 2인자]의 이미지가 강하죠. 물론 옛날 이야기이고, 이제는 [초음속의 고슴도치] 소닉이 [B버튼 대쉬]의 마리오와 100m 달리기나 하는 처참한 신세가 되었습니다만. (잠깐 눈물 좀 닦고)
 얼핏 보기에는 그저 웃음거리로 들어간 부분인 것 같습니다만, 이런 게임광의 모습은 주인공의 도시락 전쟁 참전과 겹치는 부분이 있습니다. 똑같이 외부에서 잉여 취급을 당합니다만(..), 하는 사람들은 진지하고, 노력에 따라서 큰 성취감을 얻지요.
 도시락 전쟁이라는 소재로는 공감을 사기가 어렵기 때문에(계단을 달리는 『학교의 계단』 쪽이 더 공감을 살 수 있겠지요. ;;), 이렇게 게임을 끌어들인 것으로 보입니다. 적어도 게임하느라 화장실 가는 걸 꾹 참아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작품에 대해 [그냥 병신 같다]고는 말하지 않을 테고, 오히려 게임에 빠졌던 경험을 기초로 어느 정도 공감을 이끌어 낼 수 있을 테니까요.


 3줄 요약.
 [병신 같지만 멋있어]나, [병신 같다니 무슨 소리야!]라는 감상을 느낀다면 성공.
 하지만 후속권은 대체 어떻게 될 것인지 짐작도 안 가는데 (..)
 아무튼 새턴이 잉여 게임기라는 사실은 인정한다! 하지만 새턴을 잉여 게임기 취급하는 건 용서할 수 없어!

트랙백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TrackbackURL : http://dazai.egloos.com/tb/2489418 [도움말]

덧글

  • Ratatosk 2009/09/15 14:29 # 답글

    번역하신 분이 2권은 더 재밌다고.....;;
    너무 기대하면 안 될 것같기도 하지만 이건 기대사이를 빠져나가는 맛이 재미난 것같아서 기대해도 될 것같기도 하고말이죠.
  • 인간♡실격 2009/09/15 17:49 #

    1권의 경우는 사실 '어라, 뜻밖에 재미있군?'이라는 느낌도 컸으니까요.
    과연 이 소재를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까 걱정되긴 하지만, 일단 2권 평가가 좋은 건 확실한 듯 하니. ^^;;;
  • isgray 2009/09/15 14:48 # 답글

    원작이 벤...토...군요... 아아. 뭔가 제 나이대에선 그리운 듯한... 엉엉;
  • 인간♡실격 2009/09/15 17:51 #

    저는 [벤-또!]라는 인상이 강해서 도시락전쟁이라는 제목이 조금 어색했습니다. 벤또워! 라는 느낌? (..)
    도시락을 벤또라고 부르던 시기라면 대체 언제 (........)
  • 슬견 2009/09/15 15:38 # 답글

    병신같지만 멋있어에 공감 100배[야]
  • 인간♡실격 2009/09/15 17:52 #

    저는 '이런 걸 병신이라고 부르다니 너무해!'라는 입장이지만 말이죠 (..)
  • 시오 2009/09/15 16:19 # 답글

    언니 이거 재미있을 거 같아요...;;;; 코미디라는 것만으로는 끌리지 않았는데... 아아아. 백합이라거나(작은소리로)
    다음에 책 살때 고려해보겠습니다.^^
  • 인간♡실격 2009/09/15 18:34 #

    비중도 좀 작고, 주로 주인공을 구박하는 게 일이라 백합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그렇군요 (..)
  • DOSKHARAAS 2009/09/15 16:24 # 답글

    제 동생과 저는 어린 시절의 좌절감을 극복하기 위해, 중고 새턴과 드캐를 작년에 구입했습니다. 플스 1, 2와 함께 한시대를 풍미한 차세대기 게임기가 한자리에.
  • 인간♡실격 2009/09/15 18:34 #

    잘못 쓰셨습니다.
    [구세대 게임기가 한 가득]이 맞네요. (..)
  • DOSKHARAAS 2009/09/16 00:28 #

    예전엔 새턴이랑 플스랑 3DO랑은 차세대기, 드캐랑 플스2는 초세대기라고 했어요.
  • 인간♡실격 2009/09/16 15:45 #

    [꾸러기들]이라는 먼 옛날의 가수가 부른 노래가 있었죠.
    "겨우 몇 십 만년 전~ 겨우 몇 억 만년 전~" (..)

    대체 얼마나 예전인 건가요 (..)
  • DOSKHARAAS 2009/09/16 17:57 #

    SF적인 센스 오브 원더에 입각한 시간관이 아닌, 미시적인 시간관으로 90년대입니당.
  • 인간♡실격 2009/09/17 11:06 #

    90년대에도 사람이 살았다니! (..)
  • 세이앤드 2009/09/15 17:30 # 답글

    '바보같은' 코미디가 늘어나는 세태에 한몫하는 소설이라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바보같은은 결코 모멸적 형용사가 아닙니다(...)

    그건 그렇고 저는 2권은 읽다가 때려쳤는데... 정말 2권이 더 재밌으려나요.
  • 인간♡실격 2009/09/16 00:07 #

    각잡고 똑똑한 척 하지만 사실 '바보'인 인물이 아니라, 바보계 인물들이 주역이 되는 작품은 즐거워서 좋더군요.
    일단 호평이 많은 건 확실한 듯 한데, 밸런스가 미묘한 작품이라 어느 쪽을 중시해서 보는가가 문제가 될 듯 하군요. ^^;;;
  • 나정일넷 2009/09/15 17:46 # 답글

    아무도 "반값 도시락? 배가 불렀구나!" 문단에 태클을 안걸다니, 세심한 사람들 이로구나..
  • 인간♡실격 2009/09/16 00:07 #

    상냥한 분들이죠. ㅠ_ㅠ
    그걸 이렇게 찌르시는 일넷 언니는 상냥한 걸까요, 아닐까요 (..)
  • 폴리시애플 2009/09/15 17:52 # 답글

    너무 내용을 깊이 생각하지 말고 그냥 즐겁게 읽으면 즐거운 소설이죠. ㅎㅎ 작가의 스토리텔링이 꽤 돋보인다고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2권은 1권에 비해서는 개그가 줄고 열혈적 요소가 늘어나는데 전 재밌었지만 이 작품이 전체적으로 그렇듯이 호불호가 갈릴 것 같기도 합니다.
    제가 2권을 좋아하는 건 사촌인 샤가의 존재가 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 인간♡실격 2009/09/16 00:10 #

    사실 저는 [도시락을 놓고 진지하게 싸우고 있어 너무 웃겨~]라는 쪽은 아니라서(모 양의 801 개그라든가, 모 양의 백합 향기 등은 좋지만), 저런 전개라도 상관없을 것 같습니다. 다만 표지에 나와서 큰 비중 있어보였던 야리즈이 센은, 인물적 특성보다도 역할의 특성이 강조되는 느낌이더군요.
    사촌은 어떤 아이일런지 (..)
  • 17호 2009/09/15 18:36 # 답글

    국제잉여리포트에 따르면 새턴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반사회적이며 사교성이 없다고 합니다... 대략 84%정도가 그렇다고 합니다.

  • 인간♡실격 2009/09/16 00:10 #

    반론합니다.
    잉여가 국제 리포트를 작성할 리 없습니다.
    이상, 반론 종료합니다.
  • 현골 2009/09/15 19:42 # 답글

    병신같지만 멋있어!! 나쁘지 않은 느낌이네요
  • 인간♡실격 2009/09/16 00:12 #

    [XX 같지만 멋있어!]와 [멋있지만 XX 같아!]는 묘하게 어감이 다르군요. (..)
  • 아오지 2009/09/15 22:12 # 답글

    우리나라에선 10년 전부터 '포켓몬 빵 배틀'이 유행하고 있지 말입니다.
    포켓몬 스티커를 얻는 데에는 성인이건 학생이건...
  • 인간♡실격 2009/09/16 00:13 #

    그 포켓몬 빵 배틀이라는 게, 혹시, 포켓몬 스티커를 넣은 다음 포켓몬 빵은 버리는 배틀인가요? (..)
    이걸 저 도시락 전쟁과 연결하면 정말 멋있겠군요. (.......... -_)
  • 아오지 2009/09/16 15:25 #

    도시락 전쟁에서는 무얼 버려야 할까요..
  • 인간♡실격 2009/09/16 15:46 #

    애들이 버린 빵을 걸고 도시락 전쟁을 하는 겁니다 (..)
  • Ranbel 2009/09/16 13:46 # 삭제 답글

    왠지 여기다가 '이것은 한개에 300원이나 하는 라면으로 만드는 요리가 아닌가!'라고 외치던 네 과거를 올려줘야 할거 같은 기분이 든다...
  • 인간♡실격 2009/09/16 15:46 #

    요새는 사리면도 240원은 한단다……. ;;
    나도 레벨업했어. 요새는 한 끼당 700원 정도까지는 쓴단다.
  • Ranbel 2009/09/17 15:28 # 삭제

    그냥 물가가 올라서 어쩔 수 없었던거 아냐?
  • 인간♡실격 2009/09/17 16:47 #

    언제는 물가 상승과 임금 상승이 일치하더냐!
    그냥 예전처럼은 못 먹고 살겠길래... 흑.
  • pia 2009/09/16 22:20 # 삭제 답글

    전 마냥 재밌게 읽었어요. 특히 인상적인건 주인공 회상 씬에서 매번 등장하는 '당하는 캐릭터'
  • 인간♡실격 2009/09/17 11:06 #

    아, 그 녀석을 잊었군요!
    처음에는 별 생각 없이 넘어가다가, [... 어라, 또 이 이름이야?!]하면서 폭소를 터트렸습니다. 정말 불쌍했어요. ㅠ_ㅠ
  • Flame 2009/09/17 17:00 # 답글

    괜찮아요. 전 공감할 수 있어요.
    .....배고파서 자야하는데 너무 배고파서 잠이 안오는 상황에서 수면제 먹고 잠든 경험이 있는 저라면(.....)
  • 인간♡실격 2009/09/17 18:30 #

    저도 그런 경험이 있습니다.
    저는 배고파서 잠이 안 왔던 건 아니고, [지금 이 수면제 한 알을 먹으면 이틀치 식비를 아낄 수 있겠군]이라는 판단을 했었던 거지만. ;;
덧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