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지 갤러리에서 있었던, 히어로 능지처참 히어로/이능력물 대회(약칭 '판히능대')에 냈던 글.
당연히 낙선.
처, 처음부터 쓸 생각 없다가 마감 지나고 며칠 후에 생각나서 썼을 뿐이니까요!!! (..)
기, 기대 같은 거 조금도 하지 않았으니까!!! (..)
어느 칵테일 바에서.
1.
바 안에 들어서자 명랑한 목소리가 나를 반겼다.
"어서오세요~!"
아직 앳된 티가 남아 있는 바텐더 아가씨가 깊게 고개 숙이며 인사했다. 듣는 사람의 기분까지 즐겁게 해 줄 것 같은 산뜻한 울림이다. 그런데 칵테일 바치고는 인사소리가 너무 크지 않나?
"안녕하세요."
어색하게 답하며 바에 앉았다. 가뜩이나 작은 가게인데 손님이라곤 한 명도 없다. 왜 이리 반가워했는지 알겠구만.
"아, 저, 저기요! 개장한 지 얼마 안 되어서 손님이 별로 안 계신 거지, 절~대로 제 솜씨가 없어서 그런 건 아니거든요!"
"목이 나빠서 그렇죠. 간판도 그렇고 인테리어도 별로네요."
"다른 건 몰라도 인테리어는 엄청 공들였는데요!"
다른 건 몰라도 키티 인형으로 가득한 칵테일 바 같은 곳에 올 손님은 없겠지. 당장 나만 해도, 이 아가씨의 인사하는 각도가 조금만 낮았으면 문 닫고 줄행랑을 쳤을 테니까.
바텐더도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눈치챈 모양이었다. 이 화제를 접고 싶은지 '어떤 걸 드릴까요?' 하고 질문을 던져온다. 메뉴판은 키티 인형이 양손으로 꼭 끌어 안고 있어서, 그냥 카미카제를 주문했다.
'잠시만요오~ 카미카제 재료는~ 재료는~' 하고 칵테일을 만드는 동안, 가게 내부를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았다. 키티로 가득하다는 이야기는 취소해야 할 모양이다. 나로서는 이름도 모르는 인형이 가게 곳곳을 점거하고 있다. 인형샵인지 주점인지 정체성을 확실히 하는 게 좋지 않을까.
"자! 완성했습니다!"
"왜 그렇게 땀을 흘리시죠……."
바텐더는 마라톤이라도 완주한 사람처럼 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살짝 불안해졌지만 잔을 받아들고 한 모금 마신다.
"맛있네요. 이렇게 맛있는 라임주스는 처음 먹어봅니다."
"카, 칵테일인데요……."
"라임주스. 과즙 98%."
"카, 카미카제거든요……."
바텐더에게 잔을 돌려주었다. 말도 안 된다는 표정으로 한 모금 마신다. 예쁜 얼굴이 불쌍할 정도로 일그러진다.
"흠. 성질내거나 하지 않을 테니까 그렇게 울 것 같은 표정 짓지 마시고요."
"너무 시어여……."
"어른이니까 참아요."
그녀는 '죄, 죄송합니다! 금방 다시 만들게요!'라며 계속 사과를 했다. 딱히 라임주스라도 상관은 없지만, 그냥 그러라고 하는 게 나을 것 같아서 고개를 끄덕였다.
'이, 이번에야말로!'라며 셰이커를 뒤적이던 그녀가, 갑자기 앗 하며 고개를 쳐들었다.
"저, 저기요, 아저씨……가 아니라 손님! 혹시 예전에 저 보신 적 없으세요?"
"아는 척 해도 소용 없거든요."
"아, 아니, 진짜로 본 적 있는 것 같아서 그런 건데……."
글쎄, 그런 게 '가능'하다면 나도 맘 고생 안 할 거거든요.
"전 아가씨 본 적 없으니까, 애교로 넘길 생각 마세요. 화 안 낼 테니까, 연습하는 셈 치고 다시 만들어 봐요."
"아닌데……, 진짜로 본 적 있는데……."
"전 본 적 없어요."
"아, 그러세요!"
그녀는 뚱해져서는 칵테일 만들기에 열중했다. 칵테일에 대해서 잘 모르는 나지만, 카미카제에 굵은 소금이 들어가는 일은 없지 않나 싶은데…….
결국 나는 그날, 카미카제라는 칵테일이 얼마나 다양한 형태로 만들어질 수 있는지 확인하는 역사적 밤을 보냈다.
"별로 복잡하지도 않은 레시피로 이렇게까지 실패할 수 있다니, 아가씨는 '요리에 실패하는' 이능력자인가요."
"으, 으으으. 몰라요! 제대로 만들어 보일 테니까, 내일 꼭 다시 와주세요!"
생각해 볼게요, 라고 말한 다음 가게를 나왔다.
모처럼 즐거운 하루를 보낸 것 같다. 하지만 이 가게에 다시 방문할지 아닐지는 조금 고민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솔직히 이 아가씨는 굉장히 내가 좋아하는 타입이지만, 성격도 용모도 정말 마음에 들지만, 그러니까 될 수 있으면 다시 만나고 싶지 않다.
나는 '존재부정자存在否定者'.
세계와 그 기반 법칙에서 '잊혀지는 것'이 능력인 초인이니까.
2.
목 뒤에 칼날이 찍히는 바람에 잠에서 깨어났다.
"젠장. 지갑이 필요하면 지갑만 털면 되잖아! 일어나지도 않았는데 왜 사람을 찌르고 지랄이야!"
깜짝 놀라 덜덜 떠는 녀석들을 두들겨 패고 지갑을 되찾았다. 그 녀석들의 지갑도 챙겨두었다. 그나마 나 같은 놈을 만나서 몇 대 맞고 마는 거지, 괜히 유혈계 초인에게 걸리면 죽는다.
요즘엔 이렇게 일어나는 일이 많다. 100년 전만 해도 이렇지 않았는데, 어느 날인가부터 초인들이 마구 태어나기 시작하면서 이렇게 되어 버렸다. 사회조직의 제어를 넘어서는 개인이 등장하고, 그런 개인이 욕망 추구를 하다보면 이렇게 된다. 초인의 등장은 초인 범죄를 부르고, 초인 범죄는 초인 영웅을 부르고, 초인 영웅은 사적 제재를 실행한다. 사회가 똑바로 돌아갈 턱이 있나.
처음에는 나도 이 사회를 어떻겐가 하려고 꽤 애를 썼다. 나는 보통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을 할 수 있는데다, 자랑은 아니지만 초인과 싸워도 져 본 적은 없다. 이 사회의 혼란을 막고 사람들에게 정상적인 삶을~ 이라고 생각해서 나름 노력도 해 보았다.
하지만 누군가를 설득해 봤자 '잊혀져 버린다'. 이러이렇게 해서 교섭하자고 이야기를 해도 내가 옆에서 떠나면 '망각되어 버린다'. 내가 한 일들은 아예 사라지거나, 누군가의 업적으로 대체되었다. 나라는 존재도 잊혀져서, 내 여동생이 '무남독녀'로 곱게 시집가는 걸 볼 때는 살짝 눈물이 났다. 부모님이 돌아가실 때는, 남인 척 하고 들어가서 펑펑 울었다. 친척들 사이에서 그 이상한 남자는 며칠쯤 화제가 되었지만, 얼마 후에는 아무도 기억하지 못했다.
그때쯤 되자, 왜 이 자식들이 알록달록 스판덱스를 입고 이상한 이름을 붙여 가며 자기를 어필하려 드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보통 사람들보다 '현실'에 맞서 싸우기 쉬우니까, 표현욕도 그만큼 늘어나는 것이다. 물론 그 정도까지는 바라지 않았다. 나를 알리고 싶었다. 내가 특별하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그저 살아 있다는 걸 인정 받고 싶었다.
세계와 자신에 대한 무력감을 느낀 인간은, 극단적 자기표현으로 자살을 택한다고 한다. 나는 그렇게 되고 싶지 않았지만, 조만간 그렇게 될지도 모른다. 매 순간마다 주의하지 않으면 세계의 모든 법칙에서 '잊혀져 버리는데', 나를 붙잡아 줄 인연의 끈은 너무나도 흐릿하기 그지없었다.
또 좌절하게 되리라는 걸 알면서도, 어제 갔던 바로 향했다.
3.
뜻밖에도 바 안에는 사람이 꽤 많았다. 키티와는 조금도 어울리지 않는 아저씨들 투성이였다.
"안녕하세요."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칵테일을 만드느라 정신 없는 모양이다.
"어이구, 손님 오셨네. 죄송해서 어쩐다."
바 앞에 앉아 있던 덩치 큰 대머리가 히죽대며 말을 던졌다. 분주하게 움직이던 그녀가 이쪽을 보더니 무뚝뚝하게 말했다.
"죄송합니다, 손님. 지금 다른 손님분들이 많이 오셔서요. 나중에 방문해주세요."
이쪽을 알아본 기색은 전혀 없다. 그 큰 눈동자에 비치는 것은 짜증뿐이었다.
기대하지 않는다는 건 다 거짓말이다. 한 1억번 쯤은 깨닫는 것 같은데, 그래도 다 소용없다. 그래도 하루 정도는 기억해 줄 수 있지 않을까 싶었는데, 그렇게 많은 독약을 투약해 놓고 잊어버리는 건 너무하다.
"알겠습니다. 실례했습니다."
"아니아니, 잠깐만. 야, 저 손님 좀 모셔와라?"
울분을 꾹 누르고 나가려는데, 손님들 중 하나가 문을 가로막고 섰다. 키티 인형 옆에 앉아 있을 때는 잘 몰랐는데, 이렇게 보니 덩치가 꽤 좋다. 이쪽을 보고 씨익 웃어보이는데, 잘 발달된 안면 근육을 보니 인상 좀 쓰고 산 모양이다. 주위를 둘러보자 하나 같이 그런 인간들 투성이었다.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어이, 손님, 술이나 한 잔 합시다?"
"야!"
그녀가 앙칼진 목소리를 냈다. 다음 순간 들고 있던 보드카 병이 대머리 사내의 정수리를 호쾌하게 후려갈긴다. 쨍그랑 하는 소음과 함께 흩날리는 파편. 손목에 스냅이 들어가 있는 걸 보니 이 여자, 아무래도 술병으로 머리 좀 깨 본 모양이다.
주위의 사내들이 전부 벌떡 일어서는데, 대머리는 태연히 손을 들어 올려 모두를 제지했다.
"술을 내놓으려면 잔에 따라서 내놔야지. 넌 바텐더 되려면 멀었어, 이것아."
"동감입니다. 칵테일에 소금을 타는 것도 그만둬야죠."
주위의 시선이 전부 이쪽으로 쏠려서, 그냥 고개를 으쓱해 보였다.
"그, 그런 적 없어!"
"거, 재밌는 분이구만. 이쪽으로 좀 모셔와라. 담력 있으신 분은 대접 좀 해드려야지."
일단 이렇게 된 거 그냥 가기도 곤란하고 해서, 대머리 옆 자리에 앉아 카미카제를 주문했다.
소금 다섯 스푼, 라임 쥬스, 보드카, 화이트 퀴라소로 만들어진 카미카제를 마시며 대머리의 한탄을 들었다.
"그러니까 선생님 댁에 커다란 금고가 있는데, 암호가 무려 2바이트 문자 2의 20승 개로 만들어진 거란 말이죠?"
"이 아저씨 똑똑하구만."
"원래는 전자식 전용키가 있는데 어쩌다보니 쓸 수 없게 되었다. 예비키는 있는데 거기에는 암호가 기록되어 있지 않아서 수동 입력을 해 줘야 할 필요가 있고요."
"그렇줴!"
"그리고 다행히도 여기 바텐더 아가씨가, 그 암호를 기억하고 계시다고요."
"그럼그럼."
"그럴 리가 있나요."
영양소를 몸에만 넣고 머리에는 안 넣은 것 같은 대머리를 위해 친절하게 설명해주었다. 0부터 9까지의 아라비안 숫자만 해도 10개다. 거기에 알파벳 26자만 더해도 36자가 된다. 그런데 2바이트라는 건 세계의 오만가지 특수문자를 표기하기 위한 규격이니까, 잘은 몰라도 수만개는 될 거다. 거기에 2를 곱하는 걸 10번(2의 10승)만 해도 수만개x1024개가 되고, 다시 2를 10번 곱해주면 상상을 초월하는 조합이 나온다.
"그런 걸 이 아가씨가 기억할 리가 없지 않습니까. 카미카제에 소금을 다섯 스푼씩 넣는 아가씨라고요?"
"당신 대체 뭔데 자꾸 나한테 시비야!"
진짜 화가 난 모양이다. 그렇다고 과거를 부정할 수는 없지 않은가. 잊어버릴 순 있어도.
대머리는 잠시 동안 위대한 수의 세계에 빠져 있는 것 같더니,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고 말했다.
"그거야 나도 잘 아는 일이긴 하지. 커피 타오라고 하면 걸레빤 물을 넣고 말야."
그건 선생님을 싫어하는 겁니다.
그런데 그럼 나는?
"근데 아저씨. 세상에는 초인이라는 게 있잖수?"
"있지요."
"그 중에는 전투에는 하나도 도움 안 되는데, 다른 분야로는 엄청 쓸만한 이능력을 가진 초인도 있단 말요?"
"그럴 수도 있겠네요."
"그럼 그 중에 '절대기억능력자'라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는 거, 알겠지? 야가 갸야."
"이 아가씨가 그 아가씨군요."
"너희들 만담해?!"
그녀가 소리를 지르는 것과 함께, 대머리가 내 팔을 잡고 가게 한쪽으로 집어던졌다. 자세를 취한 것도 아니고 평범한 한손 던지기인데 가게 끝까지 날아가서 벽에 부딪혔다. 무시무시한 괴력이다. 조금 아팠다. 이 자식도 초인일까. 그것도 괴력계?
사내들이 달라붙어 날 짓눌렀다. 한 놈이 잭나이프를 꺼내 내 목에 짓누른다.
"과, 관계도 없는 사람에게 뭐 하는 짓이야!"
"딱히 관계 없어 보이지 않는구만. 그 쌀쌀맞던 네가 이렇게 안달하는 걸 보니."
대머리는 그녀를 향해 싸늘하게 웃어보였다.
"안달하는 건가요? 제가 보기엔 그냥 짜증내는 거 같은데요."
"얘가 우리 조직에 있을 때 별명이 '절대영도'였거든. 이 정도로 반응 보이는 거면 대단한 거지. 그나저나 아저씨 안 아프오? 실실대고 있네?"
"분명히 그 때 약속한 대로 다 해줬잖아! 난 손 씻었어!"
"거야 니 생각이고. 시간 쓰기 아깝다. 1절만 하자. 얌전히 돌아와서 한 탕 할래, 아니면 여기서 이 새끼 목 끊어놓고 계속 장사 할래."
대충 짐작이 갔다. 그녀는 어떤 범죄조직의 브레인이었거나 정보 담당이었고, 그 와중에 쓸만한 정보를 쥔 채로 조직을 나온 것이다. 딱히 돈에 궁한 건 아니었으니 취미로 가게를 차려놓고 있었던 모양인데, 거기에 옛 조직원들이 찾아온 거고. 그리고 지금 '무고한 사람 희생시키기 싫으면 돌아와'라는 협박의 인질로 내가 선정된 것이다.
그녀의 협력이 필요한 이상 직접 손을 댈 수는 없다는 것이겠지만, 그건 그녀가 타인의 죽음 따위에 영향 받는 인간이라는 전제가 통할 때 이야기 아닐까. 요새 그런 인간 찾아보긴 쉽지 않은데.
그녀는 입술을 깨물고 이쪽을 쳐다보았다. 나는 제발 구해달라는 간절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고.
"알았어. 뜻대로 해."
엥?
화들짝 놀란 건 나만이 아니었다. 바 안의 모두가 깜짝 놀라서 그녀를 바라보았다. 이 결단에 대해 놀라는 사람이 많다는 건, 그녀의 인성을 굳게 믿고 있는 사람이 많았다는 이야기다. 대머리조차 싸늘한 웃음을 지우고 물었다.
"진심이냐 너."
"죽이라구! 난 죽어도 안 돌아갈 거니까!"
그녀는 발작하듯 소리쳤다. 모두가 멍해져 있는 가운데, 그녀는 작게 덧붙였다.
"어차피, 죽이지도 못할 테니까."
나는 '빛에게서 잊혀졌다'. 양 팔을 붙들고 있던 놈들을 힘껏 뿌리치고, 놈들 사이로 뛰어들었다. 팔꿈치로 턱을 올려치고, 팔을 부러뜨렸다.
"젠장! 투명화 능력인가?!"
놈들은 깜짝 놀라면서 바를 향해 모여들었다. 내가 끼어들 수 없도록 찰싹 달라붙어서, 주위를 향해 단단하게 포진한다. 품 안에서 총을 꺼내 사주경계를 하는 걸 보면, 초인을 상대로한 전투 훈련도 받은 모양이다. 투명한 적 상대로는 혼란이 가중되는 게 가장 난점이니까.
"막 갈겨버려! 가리지 말고!"
그 중앙에서 대머리가 소리쳤다. 젠장, 이 자식 제정신인가! 도탄跳彈으로 다칠 지도 모르잖아!
나는 다시 의식해서 빛과 연결했다. 뭔가 말을 꺼낼 틈도 주지 않고 일제 사격이 가해진다. 우와, 이 놈들 좀 대단한걸. 빗나가는 사격이 거의 없다. 대구경 탄환이 계속해서 몸 안에 파고들어서, 호흡이 괴로워진다. 쓰러지면 보기 흉할 것 같아서 계속 버텼지만, 탄환의 물리력에 마구 밀려서 벽에 쳐박히고 있었다.
"확인해 봐!"
대머리가 소리치자 두 놈이 이쪽으로 다가왔다. 철두철미한 놈인가 보다. 전신이 거의 다 으깨지는 바람에 움직일 수가 없어서, 반재생反再生을 향한다. 일부러 존재 정보를 흐릿하게 만들어서 육체를 무너뜨린 다음, 기억하고 있는 정보에 맞춰서 육신을 재구성했다. 원래는 적출했어야 할 납탄의 존재를 부정하지 않고 끼워맞춰, 육신에 금金의 속성을 부여한다.
힘껏 휘둘렀다.
운동 에너지는 질량과 속도의 곱에 비례하는 법. 금속화 해서 무거워진 덕에 펀치력도 상승. 훅 두번으로 다가온 놈들의 턱뼈를 으깨놓을 수 있었다. 기세를 타고 있는 힘껏 돌격, 바디체크로 네놈을 날려버렸다. 날아드는 총격을 몸으로 튕겨내고, 일단 부하들부터 차례대로 처리했다.
대머리는 그녀를 꾹 움켜쥔 채로 나와 대치했다.
"이 자식! 싸구려 '질량변환자質量變換者'인 모양이다만, 내게는 안 통한다! 왜냐면! 나는!"
둘 사이의 라인이 일치한 순간, 그녀를 한 쪽으로 던져버리고는 나를 향해 돌진하기 시작했다.
산만한 덩치가 미식 축구 선수처럼 자세를 낮추고 태클해 들어오는 모습에는 굉장한 박력이 있었다. 투우 하는 것도 아니고 그걸 받아줄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지만, 몸이 말을 제대로 듣지 않는다. 대머리가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그 주변의 모든 것들이 빨려들기 시작했다.
"중력을 조절할 수 있으니까! 받아봐라, 그라비톤 버스터!"
자신을 중심점으로 거대중력을 만들어 내서 돌격하는 기술인 모양이다. 달리면 달릴 수록 중력이 강해지니 상대는 제대로 회피하지도 못하고 거대중력의 중심에 말려들어가 으깨지는 박력 넘치는 기술 같았다. 사실 표정만으로도 박력은 충분하지만. 기술명이 좀 이상한 것 같은데, 나름 열심히 지은 이름일테니 태클은 걸지 말아야겠다.
나는 그냥 조용히 버티고 서서, 돌진해 들어오는 대머리의 어깨에 오른손을 가져다 댔다.
아주 잠시 동안,
존재하고 싶다는 욕망을 잊는다.
존재를, 부정했다.
내 오른손과 함께 대머리의 존재가 사라졌다. 허공으로 빨려들던 물건들도 조용히 바닥으로 떨어져 내린다.
"댁이 살면서 쌓아둔 연이 깊고 강하다면, 나처럼 되살아날 수 있을지도 모르죠. 얼마나 오래 버틸지는 모르지만."
싸움은 끝났다.
4.
조직의 똘마니들을 내다버리고 바를 청소하는 동안, 그녀는 한 마디 말도 하지 않았다.
간신히 정리를 끝내고 바에 앉자, 아무 말도 없이 카미카제를 내 주었다.
"마, 맛있어?!"
"왜 놀라는 거예요 대체!!!"
"소금도 안 들었어?!"
"그러니까!!!"
침묵을 깨기에 좋은 말은 아니었던 것 같지만, 솔직한 감상이니까 어쩔 수 없다.
그녀는 가게 밖에 'Close' 푯말을 내걸고, 이번엔 자기 몫의 카미카제를 만들었다. 단번에 들이키고는 이쪽을 향해 무서운 시선을 향한다. 무슨 말을 꺼내면 좋을지 잘 모르겠어서, 일단 가장 먼저 생각나는 말을 했다.
"저기……, 고마워요. 기억해 줘서."
"죄송한데요, 아저씨. 노래는 안 들어서 유행가 가사 같은 건 잘 모르거든요?"
"아, 아니, 그게 아니라……."
나는 그녀에게 말했다. 내가 어떤 능력을 갖고 있는지, 그리고 자신을 기억해주는 사람을 얼마나 구하고 있었는지. 아직 잊어버리지 않았을 뿐인지도 모르지만, 그녀가 날 알아보았다고 느낀 순간 얼마나 기뻤는지.
이야기를 끝내자, 그녀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한 잔, 더 드려요?"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는 다시 한 번 칵테일을 만들기 시작했다. 소금을 병째로 들이부은 카미카제를 내 앞에 내려놓고, 산뜻하기 그지 없는 얼굴로 말한다.
"마셔요."
"예……? 제가 그렇게 나쁜 말을……?"
"마시라고요 이 나쁜 아저씨야! 남들이 자기를 잊어먹는다고 징징대는 아저씨가! 어째서! 어째서 절대로 안 잊어먹겠다고 맹세한 여자애 얼굴은 잊어버리는 거예요!! 기억 안 나요?! 20년 전에! 이 동네에서! 차에 치일뻔한 꼬마애 하나 구해줬잖아요! 이름 물어보니까 알아도 소용 없다고 하고! 왜냐고 물으니까 어차피 잊어버릴 거라고 하고! 안 잊을 거라고, 절대로 안 잊어버릴 거라고 맹세했는데도 그냥 가버렸잖아요!"
나는,
멍하니,
잊지 않겠다는 맹세를 지키기 위해,
아무 것도 잊을 수 없는 '절대기억'을 손에 넣은 초인을 보았다.
"으아아아아악! 생각해보니까 진짜 재수 없어! 소금이나 쳐먹어요!"
終.




덧글
수험생羅正一 2009/07/04 10:31 # 답글
낙선이라기 보다는 기간 초과였잖아요(...)
인간♡실격 2009/07/04 10:40 #
그래서 원래 제목은 [판히능대 참가 못한 작품]이었는데, 나중에 심사목록에 들어가 있더라구요. (..)이걸 참가 못한 작품이라고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다가, 낙선한 건 확실하니까 [낙선작]으로. (..)
isgray 2009/07/04 10:40 # 답글
그러게말입니다.
인간♡실격 2009/07/04 10:40 #
위에 덧글 달았습니다 (..)
isgray 2009/07/04 10:45 # 답글
지우기도 애매해서요. (...)
인간♡실격 2009/07/04 10:47 #
이것이 바로 타이밍 (..)
달걀폭풍 2009/07/04 21:29 # 답글
전 판히능대를 쓸 때 가장 뇌가 썩어있었음. 하드하게 써보려고 했는데...
인간♡실격 2009/07/04 21:33 #
달폭 언니가 쓰신 작품이……바로 그 유명한……
아…….
현골 2009/07/05 00:01 # 답글
이거 재밌네요.음...그런데 이전에 한 번 인실언니 이글루에서 본거같은데요...; 지웠다가 다시 올린 건가효??
인간♡실격 2009/07/05 01:15 #
여러 잡담을 묶어서 올렸었는데, 그 중 하나가 자살과 관련된 것이라 차단되는 해프닝이 있었지요. (..)
Ratatosk 2009/07/05 00:48 # 답글
재밌네요. 주인공능력이 좀 덜덜하네요.소, 소금구이나....;;
인간♡실격 2009/07/05 01:26 #
이 능력을 설정한 것은, 저희 팀원들 모두가 달모양 타입문의 파도의 웨이브에 휘말려 [현대이능전기물]을 플레이하게 되었을 때였습니다. 저는 그 때 유명한 [존재하는 것이라면 신이라도 죽여보이겠어]에 대응하는, [죽여봐 죽여봐 난 존재조차 하지 않거든~?] 이라는 컨셉의 이능력을 구상했고……,시간이 흘러 이렇게 재탕. (..)
[젊어서_한_삽질은_머리가_안_돌아가게_되면_천금보다_값진_보물.jpg] 라면 참 좋을텐데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