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딱히 시드노벨 아니라도 마찬가지이긴 한데요, 대충 이런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0.
[진지한 마음으로] 글을 쓰는 것을 전제 조건으로 하는 이야기입니다.
1.
글을 쓴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자신의 모든 지식, 생각, 능력을 총동원하는 일]이지요. 자신이 그동안 보고 듣고 느껴왔던 것, 경험/지식/사상/취향/그 외 모든 것들을 토대로 삼고, 그것들 중 좋은 부분들을 긁어 모아서 글이 이루어집니다.
같은 영화(ex : 영웅본색)를 보는 A씨와 B씨가 있다고 가정해 봅시다, A씨는 [행동]과 [장면]의 연출에 집중하는 사람이고, B씨는 그 인물의 행동을 불러일으키는 [감정]에 더욱 집중하는 사람입니다. A씨가 글을 쓴다면 총알이 퍼부어지는 사이로 달려가며 입에 물고 있던 성냥개비를 뱉어내는 장면이 볼만할 것이고, B씨가 글을 쓴다면 암흑가에서 살아가는 사나이들의 의리와 교감의 묘사가 볼만하겠지요?
물론 노력하면 자기의 취향이나 성향과 다른 영역도 커버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홍정훈씨가 전민희씨처럼 차분하고 조용한 느낌의 글을 쓰는 건 어려울테고, 전민희씨도 홍정훈씨처럼 과격하게 내달리는 느낌의 글을 쓰긴 어려울 겁니다. 살아오면서, 글을 쓰면서 점차 몸에 배인 그 기반과 토대, 즉 [자기 자신]을 바꾸는 건 쉽지 않거든요. 설령 바꿀 수 있다고 해도, '대체 왜?!'라는 말이 나오기 쉬울 테고요.
2.
그렇기 때문에 글을 쓰는 능력은 [쉽게 상승하지도, 하락하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글을 쓰는 능력이 동일한 이상, 리메이크의 [결과물 역시 크게 변화하지 않습니다].
생각해보세요. 당신은 무술감독입니다. 20년동안 무술 영화를 보고, 어떤 장면을 넣으면 멋질까만 생각하면서 살아 왔습니다. 그런데 한달쯤 휴가 받아 쉬었다고 해서, 머릿속에서 그동안 쌓아온 무술 연출의 '내공'이 사라질까요? 반대로 한달 휴가 받아 쉬고 돌아오니 그 내공이 마구 상승해 있을까요?
그렇지는 않을 겁니다. 글이라는 게 자기 자신을 다 걸고 쓴 결과물이라고 한다면, 아무리 애써봐야 고치고 덧붙일 수 있는 건 한계가 있지요. 동일한 과정으로 동일한 일을 반복했을 때 확고하게 다른 무엇인가가 나오려면, 그만큼 자신이 크게 바뀌어 있어야만 합니다.
그런데 그건 쉬운 일이 아니죠.
3.
따라서 [리메이크의 효율은 낮기 마련]입니다. 물론 끈기를 갖고 수정하면 조금 더 좋은 작품이 될 거예요. 다만 이 세상에 끈기를 갖고 수정해서 좋아지지 않는 작품은 어디에도 없다는 게 문제일 뿐이죠. 소설보다는 온라인 게임의 예가 더 적절할 듯 한데, 대부분의 망한 게임은 몇몇 경우를 제외하면 '이것과 이것만 수정했으면 정말 괜찮았을 텐데'라는 느낌을 사람들에게 줍니다. 이미 출간되어 있는 소설 중에도 이런 느낌을 주는 작품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건 그 사람들이 멍청하거나 게을러서가 아니라, 환경과 능력에 있어서 그 정도가 한계였기 때문인 겁니다.
다른 길, 다른 과정을 찾는 것은 그래서 중요합니다. 무엇이 부족하고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생각해서, 이미 걸어간 길에 꽃장식을 하려고 들지 말고,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겁니다. 우직하고 굳건하게 한 길을 걸어나가서 성공하는 경우도 분명히 존재합니다만, 그것은 그만큼의 역량이 갖추어져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죠. 400m 달리기에도 헉헉대는 체력으로 마라톤을 시도하면 정말 힘들거든요.
새로운 글을 쓰는 것에는 여러가지 장점이 있지요. 기분 전환이 되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짜내기 위해 고민하는 과정에서 아이디어를 짜내는 능력이 상승합니다. 글 하나를 '끝낸다'는 것이 글쟁이에게 가져다 주는 긍정적인 효과를 생각해보세요. 글 하나를 끝내고 그 글을 리메이크 한 경우에는 이야기 하나를 끝내는 거지만, 하나를 끝내고 다른 글을 끝내면 이야기 두 개를 끝낸 셈이 됩니다. 이야기의 구조를 짜내고, 형태를 만들어가는 것에 더욱 익숙해질 수 있습니다. 그만큼 [경험치를 얻게 되고, 착실하게 이 과정을 반복하면 레벨업]하는 거지요.
이미 쓴 글이 아쉽고, 거기에 들인 노력이 사라지는 것 같아서 겁나기도 하지요. 하지만 글쟁이가 쓴 글이 사라지는 일은 없습니다. 매력적이고 개성적인 인물도, 참신하고 충격적인 플롯도, 이거 정말 내가 쓴 건가 싶을 정도로 멋진 문장도 차곡차곡 쌓아두면 됩니다. 스스로의 역량이 상승한다면, 나중에 조금 더 멋지고 근사하게 꺼낼 수 있을 테니까요.
4.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비평을 기대하는 것에 있어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할 수 있습니다. 본래 비평은 작가에게 '이거 고쳐라'고 주장하기 위한 것이라기 보다는, 작품을 보는 법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작가에게의 피드백이라기 보다는 독자들끼리의 담론에 가까워요. 문제점을 지적 받고 싶은 것 뿐이라면 비평이라는 말을 쓸 필요가 없지요. 물론 문제점을 지적받는 것 자체는 좋은 일이지만……
한 두마디 말을 듣고 고칠 수 있는 문제라면 왜 진작 고치지 않았는가를 반성해야 합니다(..). 그런 문제가 아니라면, [고치고 싶어도 고칠 수 없는] 문제일 가능성이 큽니다(..). 글을 쓴다는 것이 자신의 본질과 관련되어 있다면, 그 결과물 역시 자신의 본질과 밀접하게 관련 되어 있을 테죠. 당연히 남이 한 두마디 하는 걸로 고칠 수 없단 말입니다. 설령 고칠 수 있다 하여도 자기 자신의 '개성'을 꺾어버리는 일일 가능성이 크고요. 이 문제는 어느 정도까지 굽히고 어느 정도까지 지킬 것인가를 계속 고민해야만 하고, 타인의 말보다는 자기 자신의 판단이 중요해집니다. 뼈저린 체험 없이는 쉽게 고칠 수 없기도 하고. (..)
타인의 비평보다 먼저, 자기 자신이 스스로의 장점과 단점을 깨닫고 있어야만 합니다. 타인의 비평과 감상은, 자신이 판단한 내용에 대한 참조사항이어야만 합니다. 자신의 글이 가진 장점은? 단점은? 목적은? 좋아할 사람들은? 싫어할 사람들은? 그 판단은 얼마나 옳았고 얼마나 틀렸는가? 우선 이런 질문을 받았을 때 확실히 대답할 수 있을 정도로 자신과 자신의 글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게 비평을 요청하는 것보다 먼저 행해져야만 합니다.
5.
좀 긴데다 주제에도 어울리지 않는 설교조지만, 그동안 나름이나마 글 쓰고 다른 분들 보며 느낀 것들입니다. 조금이나마 도움 되는 부분이 있으면 좋겠네요. ^^
3줄 요약.
자신의 레벨 = 글의 레벨.
자신의 레벨이 레벨업했다고 확신하지 않는다면 리메이크는 삽질이 되기 쉬워요.
비평 요청하는 것보다, 스스로 자신의 글을 한 번 더 돌이켜보는 게 좋답니다.
0.
[진지한 마음으로] 글을 쓰는 것을 전제 조건으로 하는 이야기입니다.
1.
글을 쓴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자신의 모든 지식, 생각, 능력을 총동원하는 일]이지요. 자신이 그동안 보고 듣고 느껴왔던 것, 경험/지식/사상/취향/그 외 모든 것들을 토대로 삼고, 그것들 중 좋은 부분들을 긁어 모아서 글이 이루어집니다.
같은 영화(ex : 영웅본색)를 보는 A씨와 B씨가 있다고 가정해 봅시다, A씨는 [행동]과 [장면]의 연출에 집중하는 사람이고, B씨는 그 인물의 행동을 불러일으키는 [감정]에 더욱 집중하는 사람입니다. A씨가 글을 쓴다면 총알이 퍼부어지는 사이로 달려가며 입에 물고 있던 성냥개비를 뱉어내는 장면이 볼만할 것이고, B씨가 글을 쓴다면 암흑가에서 살아가는 사나이들의 의리와 교감의 묘사가 볼만하겠지요?
물론 노력하면 자기의 취향이나 성향과 다른 영역도 커버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홍정훈씨가 전민희씨처럼 차분하고 조용한 느낌의 글을 쓰는 건 어려울테고, 전민희씨도 홍정훈씨처럼 과격하게 내달리는 느낌의 글을 쓰긴 어려울 겁니다. 살아오면서, 글을 쓰면서 점차 몸에 배인 그 기반과 토대, 즉 [자기 자신]을 바꾸는 건 쉽지 않거든요. 설령 바꿀 수 있다고 해도, '대체 왜?!'라는 말이 나오기 쉬울 테고요.
2.
그렇기 때문에 글을 쓰는 능력은 [쉽게 상승하지도, 하락하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글을 쓰는 능력이 동일한 이상, 리메이크의 [결과물 역시 크게 변화하지 않습니다].
생각해보세요. 당신은 무술감독입니다. 20년동안 무술 영화를 보고, 어떤 장면을 넣으면 멋질까만 생각하면서 살아 왔습니다. 그런데 한달쯤 휴가 받아 쉬었다고 해서, 머릿속에서 그동안 쌓아온 무술 연출의 '내공'이 사라질까요? 반대로 한달 휴가 받아 쉬고 돌아오니 그 내공이 마구 상승해 있을까요?
그렇지는 않을 겁니다. 글이라는 게 자기 자신을 다 걸고 쓴 결과물이라고 한다면, 아무리 애써봐야 고치고 덧붙일 수 있는 건 한계가 있지요. 동일한 과정으로 동일한 일을 반복했을 때 확고하게 다른 무엇인가가 나오려면, 그만큼 자신이 크게 바뀌어 있어야만 합니다.
그런데 그건 쉬운 일이 아니죠.
3.
따라서 [리메이크의 효율은 낮기 마련]입니다. 물론 끈기를 갖고 수정하면 조금 더 좋은 작품이 될 거예요. 다만 이 세상에 끈기를 갖고 수정해서 좋아지지 않는 작품은 어디에도 없다는 게 문제일 뿐이죠. 소설보다는 온라인 게임의 예가 더 적절할 듯 한데, 대부분의 망한 게임은 몇몇 경우를 제외하면 '이것과 이것만 수정했으면 정말 괜찮았을 텐데'라는 느낌을 사람들에게 줍니다. 이미 출간되어 있는 소설 중에도 이런 느낌을 주는 작품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건 그 사람들이 멍청하거나 게을러서가 아니라, 환경과 능력에 있어서 그 정도가 한계였기 때문인 겁니다.
다른 길, 다른 과정을 찾는 것은 그래서 중요합니다. 무엇이 부족하고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생각해서, 이미 걸어간 길에 꽃장식을 하려고 들지 말고,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겁니다. 우직하고 굳건하게 한 길을 걸어나가서 성공하는 경우도 분명히 존재합니다만, 그것은 그만큼의 역량이 갖추어져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죠. 400m 달리기에도 헉헉대는 체력으로 마라톤을 시도하면 정말 힘들거든요.
새로운 글을 쓰는 것에는 여러가지 장점이 있지요. 기분 전환이 되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짜내기 위해 고민하는 과정에서 아이디어를 짜내는 능력이 상승합니다. 글 하나를 '끝낸다'는 것이 글쟁이에게 가져다 주는 긍정적인 효과를 생각해보세요. 글 하나를 끝내고 그 글을 리메이크 한 경우에는 이야기 하나를 끝내는 거지만, 하나를 끝내고 다른 글을 끝내면 이야기 두 개를 끝낸 셈이 됩니다. 이야기의 구조를 짜내고, 형태를 만들어가는 것에 더욱 익숙해질 수 있습니다. 그만큼 [경험치를 얻게 되고, 착실하게 이 과정을 반복하면 레벨업]하는 거지요.
이미 쓴 글이 아쉽고, 거기에 들인 노력이 사라지는 것 같아서 겁나기도 하지요. 하지만 글쟁이가 쓴 글이 사라지는 일은 없습니다. 매력적이고 개성적인 인물도, 참신하고 충격적인 플롯도, 이거 정말 내가 쓴 건가 싶을 정도로 멋진 문장도 차곡차곡 쌓아두면 됩니다. 스스로의 역량이 상승한다면, 나중에 조금 더 멋지고 근사하게 꺼낼 수 있을 테니까요.
4.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비평을 기대하는 것에 있어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할 수 있습니다. 본래 비평은 작가에게 '이거 고쳐라'고 주장하기 위한 것이라기 보다는, 작품을 보는 법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작가에게의 피드백이라기 보다는 독자들끼리의 담론에 가까워요. 문제점을 지적 받고 싶은 것 뿐이라면 비평이라는 말을 쓸 필요가 없지요. 물론 문제점을 지적받는 것 자체는 좋은 일이지만……
한 두마디 말을 듣고 고칠 수 있는 문제라면 왜 진작 고치지 않았는가를 반성해야 합니다(..). 그런 문제가 아니라면, [고치고 싶어도 고칠 수 없는] 문제일 가능성이 큽니다(..). 글을 쓴다는 것이 자신의 본질과 관련되어 있다면, 그 결과물 역시 자신의 본질과 밀접하게 관련 되어 있을 테죠. 당연히 남이 한 두마디 하는 걸로 고칠 수 없단 말입니다. 설령 고칠 수 있다 하여도 자기 자신의 '개성'을 꺾어버리는 일일 가능성이 크고요. 이 문제는 어느 정도까지 굽히고 어느 정도까지 지킬 것인가를 계속 고민해야만 하고, 타인의 말보다는 자기 자신의 판단이 중요해집니다. 뼈저린 체험 없이는 쉽게 고칠 수 없기도 하고. (..)
타인의 비평보다 먼저, 자기 자신이 스스로의 장점과 단점을 깨닫고 있어야만 합니다. 타인의 비평과 감상은, 자신이 판단한 내용에 대한 참조사항이어야만 합니다. 자신의 글이 가진 장점은? 단점은? 목적은? 좋아할 사람들은? 싫어할 사람들은? 그 판단은 얼마나 옳았고 얼마나 틀렸는가? 우선 이런 질문을 받았을 때 확실히 대답할 수 있을 정도로 자신과 자신의 글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게 비평을 요청하는 것보다 먼저 행해져야만 합니다.
5.
좀 긴데다 주제에도 어울리지 않는 설교조지만, 그동안 나름이나마 글 쓰고 다른 분들 보며 느낀 것들입니다. 조금이나마 도움 되는 부분이 있으면 좋겠네요. ^^
3줄 요약.
자신의 레벨 = 글의 레벨.
자신의 레벨이 레벨업했다고 확신하지 않는다면 리메이크는 삽질이 되기 쉬워요.
비평 요청하는 것보다, 스스로 자신의 글을 한 번 더 돌이켜보는 게 좋답니다.




덧글
Ratatosk 2008/07/25 18:53 # 답글
자신의 레벨 = 글의 레벨딱히 글쓰는 사람은 아니지만 최근에 너무 느껴져서 orz중입니다.
인간♡실격 2008/07/28 10:32 #
저도 심각하게 느끼는 문제랍니다. ㅠ_ㅠ하지만 잘 안써지는 글 붙잡고 끙끙대며 차곡차곡 경험치 쌓다보면 언젠가는 레벨업 할 수 있겠지 하는 희망을 갖고~ >_<
잠본이 2008/07/26 00:25 # 답글
자기 글을 무작정 새로 쓰기 전에 레벨업부터 하는 게 먼저라는 얘기군요. 과연...
인간♡실격 2008/07/28 10:36 #
물론 문제점을 찾아서 고쳐쓰는 것도 매우 중요한 일이지만요 (..)일단 글을 쓰든 사람을 만나든 일을 하든 책을 보든, 이 모든 게 다 경험치로 쌓일 거라고 생각하긴 합니다 (..)
파르마콘 2008/10/27 01:09 # 답글
음. 의도적으로 레벨업할 높은 수준의 책을 보류하여 중요한 고비에 읽어서 레벨업할 기회를 벼르고 있는 사람이 있던데. 참 계획적인거 같아여.
인간♡실격 2008/10/27 04:31 #
경험치 획득 시에 레벨차 보정이 있는 시스템이 아니니까, 좋은 책은 빨리 읽어도 좋지 않을까요? (..) 좋은 책은 끝도 없이 나오니, 맛있는 간식 떨어질까 아껴 먹을 필요는 없을 듯.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