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합 단편] 결혼식 소동 -호워프 언니는 얀데레의 꿈을 꾸는가-

 모처럼 포스팅합니다. 한동안 포스팅이 없었는데, 뭔가 거창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요즘 가난해서 책을 못 샀기 때문입니다(..). 신변잡기는 웬만하면 올리지 말아야지 하고 있는지라.
 어쨌든 하는 일도 잘 안 되고 해서 조금 우울해 있던 차에 판갤에서 재미있는 이벤트가 있어서 참가해 보았습니다. 이름하여 머식배! 판갤러인 [호워프]님과 [미르천] 님을 주연으로 하는 백합물(!)을 쓰는 대회로, 당선작 1편에게는 [머피식스틴]님이 전용 짤방을 그려주시는 대회였습니다.

 아쉽게 낙선하긴 했지만 쓰는 동안 꽤 재미있었고, 블로그를 너무 오래 방치해두는 것도 그렇고 해서 살짝 올려봅니다. 물론 등장하시는 분들의 허락은 받았습니다. ^^


1. 하루 전, 아침.

 
 우울한 이야기지만, 멸망이란 말에는 사람을 두근거리게 하는 힘이 있다. 그러나 실제의 멸망이란 그 어감만큼 강력하고 멋들어진 것이 아니라서, 언제나 애매모호한 불순물을 남기고 만다.  ‘귀족의 멸망’을 맞이한 내가 그랬고, 내가 사랑하는 소녀 미르천이 그랬다.
 변화하는 사회상을 재빠르게 간파하고 훌륭하게 전향해 스스로의 기득권을 유지할 수 있었던 일부와 달리, 천아의 가문은 가장 바보 같은 방식으로 항거하다가 된서리를 맞은 경우였다. 천아의 육친들은 전부 처참하게 살해당했고, 나는 불타오르는 저택에서 간신히 천아만을 빼내 도망칠 수 있었다.
 태워 없애야 할 구 질서의 잔재로서, 새로운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불순물로서, 우리 둘은 세상에 남겨져 있었다.
 
 “처녀자리인 나로서는 센티멘탈한 감정을 느끼지 않을 수 없네.”
 “……아침부터 잠꼬대 하는 건 그만둬.”
 “예잇-”
 “수, 숨 막히니까 끌어안지 말고!”
 
 그렇지만 필사적으로 반항하는 게 귀여운 걸!
 나는 아직 잠옷차림인 천아를 꼭 끌어안은 채 침대 위를 데굴데굴 굴러다녔다. 평소에는 창백한 그 볼이 짜증과 부끄러움으로 새빨갛게 달아오를 때까지.
 
 “너 정말……!”
 “아, 이제야 체온이 좀 올라갔네.”
 
 큰 소리를 내기 바로 직전에 살짝 팔을 풀고 침대에서 내려왔다. 타이밍을 잃은 천아가 멈칫하며 나를 바라본다.
 엣헴. 실례지만 아가씨, 가정교사 경력 7년을 얕보면 곤란해요. 아가씨가 참을 수 없는 행동, 신체부위, 제한 시간 모두 다 이 가정교사 수첩 안에 완벽하게 체크해 놓고 있으니까!
 
 “목덜미 민감도 1점 상승.”
 “……뭘 적고 있는 거야 대체.”
 
 천아는 어이없어 하면서 흐트러진 머리를 손으로 슥슥 가다듬었다. 귀족 가문의 영양이라고 믿을 수 없는 거친 태도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의 목적은 머리를 정돈하는 데 있지 않으니까.
 언제나 입고 있는 낡은 잠옷. 생기가 느껴지지 않는 창백한 피부. 정체를 숨기기 위해 녹색으로 염색한 머리는, 얼굴에 난 화상을 감추기 위해 일부러 흐트러트리고 있다. 결코 아름답거나 우아하다고 할 수 없는 모습이리라.
 하지만 좁디좁은 창을 간신히 비집고 들어오는 태양을 받은 소녀의 모습은, 아무리 생각해도 믿을 수 없을 만큼 사랑스러웠다. 천아에게 그런 말을 한다면 어이없음과 질림이 절반씩 혼합된 표정으로 날 바라보며……
 
 “그런 생각하는 건 너뿐이야.”
 “응 그래 이렇게……, 엣?”
 
 매우 드문 일이지만, 천아는 지쳤다는 표정으로 날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뭐, 말하지 않아도 내 마음을 알고 있다니 좋은 징조지만♡”
 “……닥치고 아침.”
 “자-”
 “……주둥이 내밀지 말고!”
 
 지나치게 매몰찬 거절에 어깨에서 힘이 빠진다. 뭐야 정말. 이제는 자다가 울면서 일어나도 끌어안아 주지 않을 거고, 다시 잠들 때까지 손잡아 주지도 않을 거야. 그렇지만, 음, 지금까지 딱 한 번 밖에 없던 일이지만, ‘시, 심심풀이로 만들어봤는데 이상해졌어. 버릴 거지만, 뭐, 머, 먹고 싶으면 먹든가’라며 귀엽게 귀리죽을 건네주면 그건 받아줘야겠지. 에헤헤. 그리고……
 천아가 해주면 너무너무 감동해서 울어버릴 것 같은 일 100선(천아가 절대 해주지 않을 일 100선)을 머릿속에 떠올리면서 어제 저녁에 사들고 온 닭을 토막냈다. 한 마리 분의 생닭을 만져보는 게 얼마만일까.
 따뜻한 닭고기 스튜를 만들고, 옆에는 마르지도 젖지도 않은 흰 빵을 올렸다. 로마시대의 폭군과 같은 이름을 가진 소년이 배달해 준 우유병까지 식탁 위에 올려놓자, 모처럼 만드는 제대로 된 식사가 되었다.
 
 “천아야 아침 먹자-”
 “알았어. 적당히 먹을 테니까 어서 일하러 가.”
 
 아침 달라고 한 건 자기면서 시큰둥하게 대답하는 천아가 조금 얄미워졌다. 침대에 드러누워 천장을 바라보며 멍하니 있는 그녀를 안아 올린 다음, 강제로 식탁까지 옮겼다. 늘 있는 일인데도 이상하게 오늘따라 반항이 심하다.
 
 “그, 그건 네가 이상한 곳을 만지니까……”
 “이상한 곳이라니?”
 “…….”
 
 아아, 어쩐지 뿌듯한 기분. 오늘 아침에는 얼굴이 새빨갛게 된 천아를 두 번이나 볼 수 있었다. 아침에 도를 깨달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고 하던가. 아침에 행복의 도를 깨달았으니, 이제 저녁에 죽어도 좋으리라.
 
 “그, 그렇지만…… 지, 지금 죽기는 싫어. 모, 목 좀 그만 졸라!”
 
 천아의 스킨십이 좀 과격했던지라 손이 떨어져 나간 이후에도 한참동안 호흡하기가 힘겨웠다. 간신히 기침을 멈추고 난 후에 원망을 가득 담아 천아를 쳐다보자, 당황한 표정의 그녀가 눈에 들어왔다.
 어라. 리액션이 너무 과했던 걸까?
 
 “거, 걱정 하지 마! 나, 네가 원한다면 어떤 과격한 플레이라도 받아들……!”
 “저리 가 이 정신 나간 색정광아! 그보다 이건 뭐야? 음식 상태가 너무 좋잖아. 도둑질이라도 했어?”
 “무슨 소리야. 오늘은 천아랑 행복하게 보내고 싶은 날이니까, 쬐끔 무리한 것뿐이야.”
 
 ‘무슨 날?’이라며 반문하려던 천아가 입을 다물었다. 물론 오늘은 특별한 날이고, 그녀도 그것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오늘은 내가 천아를 만난 지 1172일째 되는 날이고, 처음으로 손을 붙잡은 지 1172일째 되는 날이고, 처음으로 포옹한 지 1172일째 되는 날이고, 처음으로 입을 맞춘 지 1172일째 되는 특별한 날이다.
 천아가 자진해서 내 손을 잡은 날로부터는 873일째 되는 날이고, 먼저 안겨온 날로부터는 988일째, 먼저 입을 맞춘 날로부터는 412일째, 자신을 사랑해 달라며 전신으로 유혹해 온 날로부터는 1172일째 되는 날이다. 뭐, 그런 유혹 한 적 없다고 귀엽게 부정하기 시작한지도 1172일째.
 그리고……
 
 “……매일 매일이 특별하다고 할 거지, 너?”
 “천아가 내 마음을 읽을 수 있게 된 날로부터는 889일째!”
 
 질렸다는 얼굴로 아침을 먹기 시작하는 천아의 얼굴을, 나는 잔뜩 들뜬 마음으로 바라보았다. 오늘은 하루 종일 천아와 함께 있을 생각이니까, 뭘 할지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두근거린다.
 맛있는 걸 먹고, 즐겁게 떠들면서,
 천아와의 마지막 날을 보낼 것이다.
 
 나는,
 내일,
 유명한 노예 상인 베로스와 결혼해 천아를 떠난다.
 
 
 

2. 천백칠십삼일 전.

 
 내가 천아를 처음 만났을 때, 천아는 쥐에게 먹이를 주고 있었다. 애완용으로 기르는 햄스터나 기니피그 같은 게 아니라, 진짜 쥐였다. 몸길이가 30cm는 될 것 같은 커다란 시궁쥐가 벽 틈으로 살짝 머리를 내밀어 천아에게서 먹이를 받아먹고 있었다.
 나를 천아의 방까지 안내해 준 하녀는 그 모습을 보고 작게 비명소리를 냈지만, 쥐를 쫓으러 달려들거나 하지는 않았다. 질렸다는 표정을 감추는 기색도 없이, 작은 체구의 소녀를 슬쩍 노려보고는 방을 나갈 뿐이었다.
 익숙해 보이는 모습. 이 아가씨가 기행奇行을 저지른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아마 이것도 그 중 하나인 것이겠지. 작게 목소리를 다듬고 인사를 하려고 한 순간, 그녀가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로 말을 걸어왔다.
 
 “인간의 사회를 구성하는 세 가지 요소가 뭐라고 생각해?”
 “예?”
 “당신, 새 가정교사로 온 거지? 날 가르칠 교양 정도는 필요하잖아. 인간의 사회를 구성하는 세 가지 요소가 뭐라고 생각하냐니까?”
 
 4년 가까이 가정교사 생활을 하면서 다양한 소녀들을 만났지만, 이런 태도를 보이는 학생은 처음이었다. 하지만 뭐, 나도 각오하지 않고 온 건 아니니까.
 
 “음, 글쎄요. 어떤 걸까요? 믿음, 소망, 사랑?”
 “……내 집에서 당장 나가.”
 “아, 알았어요. 스트레이트, 게이, 바이?”
 “……창문으로 나가.”
 “아우우우우. 그, 그럼 아가씨는 어떤 거라고 생각하시는데요?”
 “묻고 있는 건 내쪽이었을 텐데?”
 “어차피 뭘 말해도, 틀렸다고 하실 거죠? 그리고 상식적이지 않은 대답을 해서 놀라게 한 다음 쫓아 버리실 거죠? 제가 알고 지내던 꼬마애 중에도 그런 애가 있었는데, 글쎄 새엄마 지망생을 만나는 자리에서 일부러 바보인척 바지에 똥을 쌌다지 뭐에요. 하지만 그 분이 너무나도 자상하고 상냥하게 욕실로 데려가서 씻겨주시는 바람에 그 다음부터 그만 새어머니에 대한 불타는 욕정에……”
 “캬아아아아아아악!”
 
 괴물의 포효 같은 소리가 잠시 방 안을 채웠다. 물론 이제부터 본격적인 음담패설을 시작하려던 내가 저런 소리를 낼 리는 없고, 품격 있는 귀족가의 따님이 저런 소리를 낼 가능성도 없으니, 범인은 입을 오물거리고 있는 시궁쥐씨겠지.
 어이없음과 분노를 참지 못해 어깨를 씩씩거리고 있는 소녀가 조금 귀여워졌다. 의자 하나를 빼서 앉은 다음, 즐거운 기분으로 소녀의 모습을 감상한다.
 
 “자, 그래서요, 아가씨? 아가씨가 생각하시는 인간사회의 3 요소는 뭐지요? 설마, 모른다고 말씀하시진 않을 거죠?”
 “대답 안 해!”
 “모른다는 뜻이죠, 그거? 제가 아는 사람 중에도 그런 말버릇 가진 애가 있었는데, 하필이면 결혼식장에서 ‘평생 아내를 사랑하시겠습니까?’라는 질문에 그렇게 답해버려서 엄청 난리가 났었어요. 다행히도 신부가 똑똑한 사람이라 그 면상을 단상에 쾅쾅 내리찍으며 ‘예’라고 말하게 해서 아무 문제없이 해결되긴 했지만, 진짜 문제는 첫 날 밤에……”
 “끝도 없는 욕망! 그것을 부정하는 기만! 그리고 그것들에 힘을 싣기 위한 저열한 논리! 부정할 생각이면 해 봐!”
 
 나도 모르게 입가가 살짝 치켜 올라갔다.
 
 “별로 신선하지도 않고, 그다지 자극적이지도 않은 얘기네요. 게다가 그다지 애써서 부정할 필요도 없는데요 뭐. 틀리다고 할 만한 얘기는 아니니까요. 하지만, 음……,”
 
 아직 어린 아이에겐 욕망, 기만, 논리 같은 단어가 신선할지도 모르지만, ‘A는 B일지도 모르지만 C일 수도 있고 혹시 자신의 말솜씨가 좋고 상대가 멍청하다면 A는 절대로 A가 아니라고 주장할 수도 있는 것’이 사회다.
 하지만 그래도……,
 
 “12살짜리 아이에게는 조금 흉악한 말이네요.”
 “……!”
 
 발끈해서 덤벼온다면 그거야말로 어린애다운 태도겠지만, 그 정도까지 낚시에 걸리진 않을 모양이다. 울컥하는 것을 멈추고, 다시 공격을 시도해온다.
 
 “이, 인정한단 말이지……. 그럼 한심한 기만이 없는 만큼 쥐가 인간보다 우월하다는 것도 인정할 수 있겠네?”
 
 생존에 대한 욕망과 그것을 위한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 모든 생물의 기본이라고 한다면, 스스로를 변명하기 위한 부분이 없는 만큼 인간보다도 쥐가 낫다는 걸까. 으음, 어떨까.
 쥐의 생태 따위 모른다. 기만을 하는지 안 하는지도 모른다. 흔히들 ‘장난으로 무엇인가를 죽이는 건 인간 뿐’ 같은 이야기를 하지만, 실제로는 딱히 그렇지도 않다고 하니까. 모르고 있는 것, 잘못 알고 있는 것, 일부러 무시하고 있는 것들을 빼면 내가 ‘알고 있는 것’은 정말로 조금 뿐이다. 이 세상의 어떤 일이라도, 내가 단정 지어 말할 수 있는 건 거의 없다.
 하지만 뭐, 지금은 아가씨에게 맞춰 줘도 상관없겠지.
 
 “예, 아가씨 말대로일 수도 있겠네요.”
 “그럼……, 내가 우월하신 쥐님과 있는 걸 방해하지 말고 당장 꺼져! 너 같은 것과 이야기하는 것보다 그쪽이 훨씬 낫거든?! 가정교사 같은 거 필요 없다고 몇 번씩이나 말했었다구!”
 “…….”
 
 아, 큰일이다.
 머리에 피가 올라서 견딜 수가 없다.
 정신 차려. 그러면 큰일 나. 이 아가씨는 귀족가의 영양이다. 내가 손을 올렸다간 끝장일 것이다.
 하지만 나의 입은 나의 필사적인 기원을 가볍게 무시했다.
 
 “어째서……!”
 
 자신의 귀에도 이상하게 들릴 만큼 낮아진 목소리였다.
 말을 듣지 않게 된 것은 입만이 아니라서, 나는 어느 사이엔가 뚜벅뚜벅 소녀에게 다가가고 있었다. 소녀는 여전히 뒤를 돌아보지 않았지만, ‘뭐, 뭐하는 거야……’라고 작게 말했다. 소녀가 꼬리를 붙잡고 있던 쥐가, 악력이 약해진 틈을 타서 얼른 도망친다.
 
 “너는 어째서……!”
 
 나는 소녀의 어깨를 붙잡고, 강제로 돌려세웠다. 얼굴을 가리고 있는 긴 머리카락이 동요로 흔들린다. 나는 있는 힘껏 손을 들어올려, 저항하는 소녀를……
 꼭 끌어안았다.
 
 “어째서 이렇게 귀여운 거야!!!!!!!!!!!!!!!!!!!!!! >___________<”
 
 소녀가 발버둥 쳤다. 막았다. 발을 밟으려고 했다. 피했다. 물려고 했다. 오른쪽 손가락 두 개를 제물로 바치고 소녀의 정열적인 구애를 받아들여주었다. 아, 입 떼버렸다. 조금 아쉽다.
 당황한 나머지 굳어버린 소녀의 앞머리를 살짝 치우고, 어쩔 줄 모르는 눈동자를 직접 바라보았다. 검은 눈동자 속에 비치는 내 모습은, 기쁜 나머지 좀 지나치게 헤실대고 있었다. 억지로 정색한 다음, 진지하게 말을 걸었다.
 
 “기만이라는 게 정말 비효율적인가 하는 문제는 제쳐두고 말할게요. 아가씨. 쥐가 사람보다 우월하든 아니든 간에, 저는 사람이 더 좋아요. 그리고 그 중에서도 특히 아가씨처럼 귀여운 사람이 좋은 걸요.”
 
 그것은 내가 단정 지어 말할 수 있는 몇 가지 말 중 하나였다. 이 세상에 몇 가지뿐인, 절대로 거짓이나 착각이 되지 않는 말.
 그리고 그 말에 대한 소녀의 반응은 이상할 정도로 격렬했다. 잠시 사그라들었던 반항이 몇 배는 강해져서 되돌아온다. 격렬하게 팔다리를 휘둘러 나에게서 멀어지려 했다.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일을 목격하고, 가장 소중한 곳을 침범당한 것처럼 분노를 터트리고 있었다.
 나는 소녀를 붙잡은 손을 놓지 않았다. 더욱 더 세게 끌어안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그 말은 소녀의 역린이었던 것임을.
 일부러 스스로의 얼굴에 화상을 낸, 힘들게 찾아온 가정교사들을 모두 거부한,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것을 거부한, 기벽奇癖이 있는 이 아가씨는, ‘좋아한다’는 말을 듣는 것에 격심한 분노를 느끼고 있는 것이다.
 
 “웃기지마! 그런 말 믿을 것 같아?! 어차피 필요한 건 일자리일테지! 그러니까 잘 보이고 싶은 것뿐이잖아! 어떻게 그런 이유로, 좋아한다느니 어쩌니 하는 말을 지껄일 수 있지?!”
 “사람은…… 무슨 말이든 할 수 있어요. 무슨 이유로든 말이죠. 하지만 만약 아가씨가, 순수하고 무구한 감정 없이 누군가를 좋아한다고 말해선 안 된다고 생각하시는 거라면, 안심하셔도 괜찮아요.”
 
 나는 소녀를 붙잡고 있던 손을 놓았다. 꼭 끌어안고 있으면 얼굴을 볼 수가 없으니까. 완전히 힘이 빠져 힘없이 떨어져나간 소녀의 얼굴은 눈물로 흠뻑 젖어 있었다. 화가 나면 우는 타입인걸까. 아니면, 좋아한다는 말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슬퍼지는 걸까.
 
 “제 별명은, 제가 지은 거예요. 12살이 되던 해, 호빗처럼 다정하고, 드워프처럼 강인하며, 엘프처럼 변하지 않는 사람이 되길 스스로에게 약속하면서 그렇게 지었지요. 그 뒤로 수많은 일이 있었지만, 단 한 번도 그 약속을 잊지 않았어요.”
 
 이 소녀가 어째서 좋아한다는 말에 그토록 심한 거부감을 보이고 있는지 나는 알 수 없다. 무슨 일이 있었을까. 어째서 그렇게 되었을까. 하지만 나는 그 이유에는 관심이 없다. 내가 관심 있는 것은, 내가 좋아하게 된 것은, 이 소녀의 지금이니까.
 타인을 기피하고, 자신을 상처 입히며, 수상한 논리로 사람보다 쥐가 낫다고 주장하면서도, 좋아한다는 말은 함부로 내뱉어선 안 되는 순수한 것이라고 믿고 있는 지금이니까.
 
 “지금 두 번째로 자신에게 약속하겠어요.”
 
 기분만은 먼 옛날 낭만담의 기사님처럼, 소녀의 한 손에 입을 맞추었다.
 
 “앞으로 무슨 일이 생긴다 해도, 어떤 순간이 닥쳐온다고 해도, 저는 아가씨를 좋아할 거예요. 만약 그 마음이 조금이라도 퇴색된다면, 제가 먼저 아가씨를 떠날게요.”
 
 한참 후.
 멍해져 있던 소녀가 새빨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말을 더듬으며 화를 내기 시작했지만, 나는 스스로의 약속을 꿋꿋하게 지켰다. 당장 나가지 않으면 죽어(!)버리겠다는 등의 소란이 일어났지만, 나는 그 모든 소란을 제압하고 소녀의 옆에 찰싹 달라붙었다.
 
 나와 천아가 처음 만난 날이었다.
 
 
 

3. 하루 전, 저녁.

 
 우울한 이야기지만, 천아와 보낸 마지막 날은 생각만큼 즐겁지 못했다. 지금까지도 종종 그랬지만, 하필 오늘따라 천아는 열을 내며 드러누워 버렸던 것이다. 먼 곳까지는 몰라도 근처 공원 정도까지는 어떻게든 외출해보고 싶었는데, 점심과 저녁을 예약해둔 식당에도 모두 취소 신청을 해야만 할 정도였다.
 뭐, 그래도 천아와 함께 있으니까 충분히 즐겁다. 나는 아파 죽어 가는데 왜 콧노래를 부르냐며 그녀가 도끼눈을 뜨기도 했지만, 그래도 좋은 건 좋은 거니까 좋지 않은가.
 억지로 죽을 먹이고 천아를 재운 다음, 무엇을 할까 잠시 고민했다. 사실은 대청소라도 하고 싶었지만, 환자가 있는데 먼지가 날릴 일을 할 수는 없다. 차라리 이별의 편지라도……, 아.
 예전에 주워 놓았던 스케치북을 꺼내 들고 식탁 의자에 앉았다. 모처럼이라 잘 될지 모르지만, 그림을 그려보고 싶어졌다. 나와 천아가 함께 살았던, 이 집을 그리기 시작했다.
 
 낡은 집이었다. 언젠가 천장이 무너져서 깔려 죽는 게 아닐까 늘 불안해해야 했다. 좋았던 점이라고 하면, 두려움도 경계심도 없이 집 안을 태연하게 돌아다니는 쥐들 때문에 천아가 기뻐했던 정도일까.
 좁은 집이었다. 천아가 누워 있는 침대와, 내가 지금 앉아 있는 식탁을 제외한 어떤 가구도 들여놓을 수가 없었다. 빨래한 옷을 말리기 위해서는 방을 사선으로 가로질러 줄을 쳐야만 했다.
 어두운 집이었다. 지하실인데다 창은 단 하나 뿐이었고, 바깥의 지면보다 위치가 낮았다. 외부와 통할 수 있는 공간은 그저 반 뼘 정도였고, 그나마도 낮에는 좀처럼 열어둘 수 없었다. 지나가면서 그 틈으로 쓰레기를 차 넣는 인간들이 있으니까.
 하지만 나에게는 소중한 곳이었다. 가족도 재산도 모두 잃어버린 천아를 쉬게 해 줄 수 있었던 유일한 곳이었으니까.
 
 “울어?”
 
 뜻밖의 말이 들려와서 정신이 번쩍 들었다. 어느 사이엔가 일어난 천아가 이불을 둘둘 만 채 다가와 내 뒤에 서 있었다.
 
 “으, 응? 우, 울 리가……”
 
 천아는 대답하지 않고 손가락으로 스케치북 한쪽을 가리켰다. 하필이면 가장 공들여 그린 천아의 얼굴 부분에 물방울이 잔뜩 떨어져 있었다. 화들짝 놀라 소매로 닦아내려다가, 그렇게 하면 흑연이 더 번지리라는 사실을 깨닫고 손을 멈춘다. 눈이 퉁퉁 붓고, 볼에는 눈물이 흘러내린 흔적이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자각했다.
 ……누군가의 앞에서 울지 않으려고 애썼는데, 하필이면 천아 앞에서 우는 모습을 보이다니. 얼굴에 피가 확 몰리는 것 같은 느낌에 나도 몰래 고개를 푹 숙이고 말았다.
 
 “……눈물이나 닦아.”
 
 천아가 건네주는 이불로 눈물을 닦으려다가,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확 내팽개쳤다. 천아는 드물게도 히죽대며 웃더니, 짧게 물었다.
 
 “그런데 왜 울고 있어?”
 “그냥. 갑자기 이런저런 생각이 들어서.”
 “흐응.”
 
 평소라면 흥미 없다는 듯 휙 하고 돌아설 차례인데, 어째서인지 약간 반응이 다르다. 조금 망설이는 것 같더니, 작은 목소리로 말해왔다.
 
 “정확히 무슨 생각이었는지 말하면, 뭐, 뭔가 만들어 줄지도……. 우, 우앗! 뭐하는 거야! 갑자기 일어나지 마! 놀랐잖아!”
 “아……, 미안…….”
 
 뜻밖의 말에 나도 모르게 일어나서 천아를 끌어안아 버릴 뻔했던 것 같다. 간신히 진정하고 자리에 앉자, 천아는 ‘그럼 결정된 거지?’라고 말하고는 뒤돌아서서 부엌으로 향했다. 계란을 깨고 아침에 남은 우유를 붓는 걸 보니 스크램블 에그를 만들 생각인 모양이다.
 요리라고 하는 것도 부끄러울 정도로 간단한 것이지만, 천아가 만들어주는 요리라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어질어질해 질 것 같다. 내가 놀라움과 감동의 소용돌이에 휩쓸려가는 동안, 천아는 계란물을 휘휘 저으면서 내게 물어왔다.
 
 “그래서, 정확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거야?”
 “그, 그냥……, 처음 여기 왔을 때를 생각했어.”
 
 귀족들이 완전히 몰락하고, 각지에서 폭동이 일어났다. 천아의 저택은 그렇게 불타버렸고, 나는 멍해져 있는 천아를 데리고 간신히 도주했다. 하지만 허약한데다 생활력 전무한 귀족 아가씨와, 그 아가씨를 데리고 있는 내 생활은 그리 쉽지 않았다.
 사람은 스스로 생각하는 것보다 많은 종류의 것을 먹을 수 있다. 하지만 쓰레기통이나 하수도에 버려지는 찌꺼기조차도 제대로 손에 넣기 위해선 수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경쟁자가 있고, 텃세가 있고, 악의가 존재한다. 그리고 그런 것들을 목격하고, 체험하면서도 울지 않는 천아가 있었다.
 차라리 겁먹고 우는 아이였다면 내 마음은 조금 더 편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천아는 그 모든 것들을 보면서 지극히 당연하다는 듯 작게 웃고 있을 뿐이었다. 힘이 없어 입꼬리 한 쪽만을 들어올린, 좌우비대칭의 기묘한 웃음이었다.
 
 - ……네가 이상한 거야. 세상은 원래 이런 거잖아. 바보 같은 짓 포기하고, 이제 날 두고 가버려. 나 같은 혹만 없으면, 어디 가든 충분히 생활할 수 있을 거 아냐.
 - 싫어요, 아가씨. 틀림없이 잘 될 거예요. 세상은 말이죠, 절대로 이렇다 저렇다 단정 지을 수 있는 게 아닌걸요. 늘 생각과 다른 사실에 카운터로 세배 데미지를 먹게 되죠. 그러니까 아가씨가 ‘세상은 지랄 같다’고 열심히 생각하면 할수록, 뜻밖의 행운이 찾아와서 아가씨를 좌절하게 만들 걸요.
 - ……무슨 바보 같은 소리를 하고 있는 거야! 정신 나간 거 아냐?! 넌 무슨 어린애야?!
 - 헤헤헹!!! 이거든요! 어린애인 게 뭐가 나빠요! 아가씨는 모르고 계신 것 같은데, 세상은 원래 어린애가 조금 더 오랫동안 어린애로 있을 수 있기 위해 발전해온 거라구요!
 - ……너 말야, 하는 말이 항상 앞뒤가 안 맞아…….
 - 이 세상 모든 일이 앞뒤가 맞으리라고 기대하는 쪽이 더 어린애 같은 거예요. 흥. 어쨌든 알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은 아가씨가 제 마음을 읽을 수 있게 된 첫 날이네요! >_<
 
 그리고 어찌어찌 악전고투를 겪은 끝에, 나는 이 집에 도착했다. 한 겨울, 미친 듯이 추운 밤이었다. 폐렴으로 죽어가고 있던 천아를 간신히 이 집으로 옮기고, 나는 이제부터 이곳이 나와 천아의 새 집이 될 것이라고 말해주었다.
 천아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무엇인가 말을 하려다 주저하고, 주위를 둘러본 다음 다시 무엇인가 말을 하려다 주저하고, 결국에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어색하게 미소 짓고 말았었다.
 
 
 “그리고 나한테 사랑해요 언니, 이제 저는 영원히 당신의 것이에요라고 말했지.”
 “말 안 했어!”
 “또 마음에도 없는 말을…….”
 
 뭔가 더 말했다간 천아가 프라이팬을 휘두를 것 같아서 입을 다물기로 했다. 천아는 잠시 동안 프라이팬을 휘두르는 것과 그 안에 든 것을 던지는 것 중 어느 쪽이 나을까 고민하는 듯 했지만, 이내 마음을 고쳐먹고 프라이팬을 내려놓았다.
 잠시 후, 듬뿍 쌓인 스크램블 에그의 산과 새까맣게 된 베이컨이 내 앞에 전달되어 왔다. 아무래도 베이컨은 지나치게 구운 것 같고, 스크램블 에그는 분량을 너무 많든 것 같지만……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지만 내가 천아에게 갖고 있는 애정을 제한다 하더라도, 아니, 그건 분명히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니까 역시 제할 수는 없지만, 어쨌든 매우 맛있었다. 저녁으로 먹기에는 좀 부족하긴 해도…….
 
 “어라? 천아 넌 안 먹어?”
 “됐어. 별로 입맛 없으니까.”
 “저기, 그럼 내가 뭐 만들어줄까? 먹고 싶었던 거 있으면 뭐든 말해. 오늘은 뭐든 다 만들어 줄게.”
 
 하지만 천아는 고개를 저었고, 나는 어쩔 수 없이 혼자서 그 스크램블 에그의 산을 정벌해야 했다. 딱히 불만이 있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얼굴을 맞대고 같이 먹고 싶었는데. 천아는 다시 침대로 돌아가 이불을 덮고 앉은 채로, 식사하는 내내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저녁식사를 끝내고 ‘잘 먹었습니다’라고 인사하는 나를 향해, 천아가 물었다.
 
 “그래서…… 무슨 일이야?”
 
 화들짝 놀라 천아를 바라보았지만, 그녀는 지나치게 무표정해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읽어낼 수가 없었다.
 
 “무, 무슨 말이야?”
 
 시치미를 뗄 수 있는 일이 아니고, 곧 이야기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데도, 허를 찔린 당혹감은 컸다. 어설프게 반문하자, 싸늘한 대답이 돌아온다.
 
 “그럼 오늘 자기가 평소와 똑같이 행동하고 있었다고 생각해? 이상한 게 당연하잖아. 넌 자각하지 못할지도 모르지만,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이유 없이 일을 쉰 적 없고,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멍하니 있던 적도 없었잖아. 그럴 수 없었잖아.”
 
 왜냐면……, 그럴 여유가 없었으니까.
 천아는 허약했고, 나는 그런 천아를 돌보지 않으면 안 되었다. 죽음을 동경하고 있는 이 아이는, 내가 없으면 식사조차 하지 않는다. 당연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극도로 적었다. 간신히 얻은 일자리도, 천아가 며칠 동안 앓거나 하면 그만둬야 했다.
 
 “신경……, 쓰고 있었구나.”
 “네가 멍청한 탓이야. 네가 바보인 탓이야. 그러니까 동정 같은 건 하지 않았어. 네가 원해서 하는 바보짓이었으니까.”
 
 무겁게 한숨을 내쉬고, 다시 묻는다.
 
 “그래서, 결국 결심이 선 거지? 내게 안녕이라고 말할 준비가 끝난 거지?”
 
 이미 모든 걸 짐작하고 있는 것처럼, 천아는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일, 결혼해. 괜찮은 사람이야. 부자고. 그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알게 되었는데, 굉장히 잘 대해줘서……”
 
 그 사실을 이제야 말하느냐, 끝까지 속일 셈이었느냐, 나는 어떻게 할 셈이냐 등의 힐문을 기대했지만, 그 중 어떤 질문도 돌아오지 않았다.
 천아는 조용히 내 얼굴을 응시하고, 조금의 표정 변화도 없이 계속 응시하고, 그리고 조용히 눈을 돌렸다.
 
 “알았어. 결혼……, 축하해. 다시는 이런 시간낭비 하지 말고, 그 바보 같은 성격 고치고.”
 
 천아는 거기까지 말하고 침대에서 일어섰다. 내가 멍하니 굳어 있는 동안, 현관으로 걸어나가 문을 열고 있었다. 잠옷 차림인데, 이미 늦은 저녁인데 밖으로 나가려고 하고 있었다.
 
 “뭐하는 거야! 대체 어딜 나가려고 하는 거야!”
 “여긴 네 집이잖아. 내가 있을 이유가 없어. 처음부터 지금까지, 단 한 순간도 그럴 이유는 없었어. 지금까지 데리고 있어줘서 고마…… 아니지, 고마워 할 이유는 없는 거지? 네가 바보라서 그랬던 것뿐이니까. 어쨌든 이젠 정신 차린 것 같으니까, 나갈게.”
 
 문을 열고 나가려는 천아의 손목을 간신히 붙들었다. 작고 메마른 손목을 세게 잡아당기고 문을 닫는다. 무서울 정도로 착 가라앉은 천아를 향해, 어떻게든 말을 쥐어짜낸다.
 
 “여, 여기 계속 있어도 괜찮아. 말했잖아. 내 남편은 부자라고. 이런 집 하나 네게 빌려주는 건 별로 대단한 일 아니야. 나, 나도 자주 올 테니까……,”
 “그 바보짓은, 또 언제가 되면 질려버리는 건데?”
 
 천아가 내 손을 붙잡는다. 그 손을 가져가 자신의 볼에 닿게 하면서, 아니, 그녀의 뺨으로 내 손을 매만지면서 말한다.
 
 “날 데리고 살겠다는 그 바보짓 때문에, 네 손은 이렇게 상처투성이가 됐잖아. 나 같은 인간, 모른 척 하면 좋았을 텐데……, 정말로 대단한 바보야, 너. 하지만, 그래도, 결국엔, 한계가 오는 거야.”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힘들었지? 엄청나게 힘들었지? 아무 것도 도와주려고 하지 않고, 모든 일에 방해가 되는, 그런 짐덩이를 데리고 사는 게 편할 리 없어. 그런 생활을 몇 년씩이나 계속했다는 점에서, 너는 정말 존경스러울 정도로 바보지만……,”
 
 그래도 결국엔 깨닫게 된다고 천아는 말했다.
 
 “한밤중에 몰래 밖에서 울고 돌아오는 걸 몇 번씩이나 봤어. 질리고 지쳐가는 널, 나는 계속 보고 있었어. 하지만 난 널 돕겠다는 생각 따위, 조금도 하지 않았어. 너 같은 바보는, 어차피 말로 해선 모를 테니까.”
 “나, 난……”
 “호빗도, 드워프도, 엘프도, 다 사라진 종족들이잖아. 마지막에 살아남은 건 욕망과 기만과 논리로 살아가는 인간뿐이야. 인간은 그렇게 다정하지 못해. 강인하지도 않아. 당연히, 언젠가는 변해버려. 그러니까 그렇게 미안한 표정 짓지 마. 네가 나쁜 게 아니니까.”
 
 뭔가가 이상했다. 천아가 날 위로하고 있었다. 미안해하고 있었다. 죄책감을 느끼는 것 같았다.
 
 “하지만 너 같은 바보라고 해도 이젠 한계를 알았잖아. 더 이상은 견딜 수 없게 됐잖아. 그러니까 다른 바보짓으로 바꿀 생각은 그만두고, 그냥 나 같은 건 잊어버려.”
 “처, 천아야! 난!”
 “너 같은 거 아무래도 좋아! 왜 모르는 거야! 만약 내가 너였다만 나 같은 인간은 찔러 죽였을 거야! 1172일이지? 그동안 네가 그렇게 지극정성으로 보살폈지? 그런데 나는 어땠어? 모든 걸 네게 떠넘기고, 아무 것도 안 했어! 무언가 작은 일이라도 할 수 있었을 텐데, 아무 것도 안 했어! 네가 좋아서 하는 일이니까 멋대로 하라면서 가만히 있었잖아! 이런 더러운 인간을, 이런 비열한 인간을 어떻게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다는 거야?!”
 
 무엇인가 말하려고 했지만, 천아는 그럴 틈을 주지 않았다.
 
 “그래! 넌 바보니까 그렇게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난 안 그래! 나는 못해! 나는 그렇게 생각할 수 없어! 이런 인간! 죽었다 깨어난다고 해도! 절대로 좋아하게 될 수 없어!!!”
 
 아, 그런 거구나…….
 천아의 말을, 비로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천아는 그냥 자기가 싫은 거구나. 뭔가 거창한 이유나, 어떤 사건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냥 자기가 싫은 거였다. 그러니까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 무엇인가 하면, 그 결과로 더욱 자기가 싫어지게 될 테니까. 물론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자신 역시 싫다. 언제 어디서, 누구와 무슨 일을 어떻게 하건, 그녀는 자기가 싫다는 결론 밖에 내지 못한다.
 그건……
 
 “그렇구나. 그러면 내가 너랑 같이 있는 건, 널 더 괴롭게 하는 거였구나. 그렇지?”
 “그래! 네가 바보처럼 생글거리면서 걱정 말라고, 다 잘 될 거라고 말할 때마다! 견딜 수 없을 만큼 내가 싫어졌어! 죽고 싶었단 말야!”
 “그럼……, 역시 헤어질 수밖에 없는 거구나. 좋은 구실이 생겼네. 천아 널 버리고 도망가기 딱 좋은 핑계가. 내 맘 편하게 해주려고 거짓말 하는 거, 절대로 아니지?”
 
 천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어차피 내게도 대답은 필요하지 않았다.
 
 “그럼, 마지막으로 부탁 하나만 하고 싶은데……, 괜찮을까?”
 “부탁?”
 “그래. 마지막이니까       해줘…….”
 
 천아는 멍해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침이 왔다.
 나는 잠들어 있는 천아의 모습을 보고 있었다.
 현관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문을 열고 방문자들을 맞이했다. 요양소에서 온 사람들이었다. 앞으론 이 사람들이 천아를 돌봐줄 것이다.
 
 “될 수 있으면 깨지 않게, 조용히 데려가 주세요. 혹시 가다가 내려달라고 부탁해도 절대 들어주지 마시고요.”
 
 나는 직접 천아를 안아들고 마차까지 옮겼다. 그 볼에 살짝 입을 맞춘 다음 마차에서 내렸다. 다시 한 번 천아를 잘 돌봐 달라고 부탁한 다음, 마차가 출발하는 것을 바라보았다.
 제대로 된 작별인사라곤 할 수 없었지만, 이걸로 할 일은 다 끝났다. 생활에 문제가 없을 만큼의 종신 연금과 저축도 만들어 두었고, 문제가 있으면 도와줄 후견인도 찾았다.
 앞으로도 잘 지내길, 굳게 바랄 뿐이다.
 
 마차가 떠난 흔적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동안, 새로운 마차가 왔다. 베로스가 보낸 마차였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베로스의 상단 마크가 찍힌 마차를 보고는 혀를 찼다. 그 정도로 베로스의 악명은 높았다. 납치라도 하는 것처럼 다급하게 사람들이 뛰쳐나와 나를 마차에 태웠고, 나는 살짝 한숨을 내쉬었다.
 
 천아를 떠나보낸 나는,
 수도 제일의 부호인 노예상인 베로스와 결혼식을 올리게 된다.
 
 
 

4. 결혼식.

 
 결혼식은 교외의 작은 교회에서 열렸다.
 수도 제일의 부호라는 베로스의 일곱 번째 결혼식인 만큼 사람들이 잔뜩 몰려들었다. 그 안에 그의 결혼식을 축하하려는 사람들이 얼마나 있을지는 의문이다. 아마도 대다수는 그에게 잘 보이고 어떻게든 얼굴 도장을 찍어보려는 것일 테고, 나머지는……
 
 “새로운 제물이라도 보러 온 것 같은 표정들이군.”
 “별로 다르지도 않겠지요.”
 
 나는 주례사 도중에 떠드는 베로스를 향해 낮게 쏘아붙였다. 주례를 맡은 신부는 약간 인상을 찡그렸지만 계속해서 주례사를 읊고 있었다. 귀족들이 모두 사라지고, 한참동안의 혼돈기가 지난 지금, 돈이라고 하는 절대의 권력을 손에 쥔 베로스에게 싫은 티를 내는 건 무리일 것이다.
 베로스는 그 찡그린 표정 따위 전혀 신경도 쓰지 않으며 말했다.
 
 “정말로 도망치지 않을 거라고는 생각 못했군.”
 “당신이 먼저 약속을 지켰으니까.”
 “강자는 약속을 지키기 쉽지. 그리고 그렇게 해야 약속을 지키지 않는 쪽을 벌할 수 있으니까.”
 “도망치지 않아서 유감이겠군요?”
 
 베로스는 싱긋 웃으며 답했다.
 
 “아니. 식이 끝나면 곧장 실험에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아서 기쁘다고 해야겠지. 슬슬 자발적인 협력 없이는 진행할 수 없는 단계니까. 풍부한 교양을 갖추고, 충분한 인내심을 가진 녀석이 필요했거든.”
 
 뭔가 대답할 기분도 들지 않아서 입을 다물고 있는 동안, 식은 차근차근 진행되었다. ‘신부는 신랑을 위해 평생동안 몸과 마음을 바쳐 헌신하겠습니까?’라고 신부님이 물어와서, 잔뜩 인상을 쓰며 ‘예’라고 답했다. 양 손의 손가락을 X자로 교차하고, ‘그럴 리가 없잖아요’라고 작게 중얼거리면서.
 신부님은 이마에 맺힌 땀을 닦으면서 이번엔 베로스에게 물었다. 베로스는 신부님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고개를 끄덕이고, 됐으니까 어서 진행하라며 손을 흔들어댔다. 아무래도 아까 말한 실험에 대한 생각에 들떠 있는 것 같았다.
 성미 급한 악단이 일단 노래부터 연주하기 시작하는 가운데, 신부님이 다급하게 식을 마무리 지으려 했다.
 
 “혹시 이 결혼에 반대할 사람이 있다면 지금 이곳에……”
 
 콰아아아아아아아앙!!!
 처럼 커다란 소리가 들렸던 것은 아니다. 성당 문은 힘겹게 열렸고, 폭음 같은 게 들려올 리가 없었다. 단순히 내 귀의 착각이었던 것이리라. 하지만 분명히 내 귀에는 분명히 들렸다. 그리고 내 눈에는 분명히 보였다.
 커다란 문을 힘겹게 열어젖힌 소녀의 타오르는 눈동자가, 나를 향해 정확히 꽂히는 모습이.
 
 “천아야! 어떻게 여기에……”
 
 당황과 놀라움이 뒤섞인 내 질문은 천아의 귀에 들리지 않았던 것 같다. 그녀는 그 작은 몸에서 나온 것이라곤 믿을 수 없는 큰 목소리로 외쳤다.
 
 “너! 무슨 짓을 한 거야! 나, 전부 들었단 말야! 네가 결혼한다는 거, 그 사람이라면서! 사지절단의 노예상, 핏덩이 의사Dr. Gore 베로스!!!”
 “음, 나다.”
 
 얼핏 익살스럽기까지 한 태도로 손까지 들어 보이며 베로스가 천아를 향해 말했다. 그러나 천아의 귀에는 그 말도 들리지 않는 것 같았다. 나에게 고정되어 흔들리지 않는 시선.
 
 “설마 모르는 거야?! 그 인간! 끔찍한 소문이 있단 말야!!!”
 
 노예 교역을 통해 손꼽히는 부를 손에 넣은 권력자이며, 동시에 유명한 의사이기도 한 그의 주변에는 이상한 소문이 떠돌아다니곤 했다. 노예에 대한 잔학행위는 흔해빠진 것이려니 할 수도 있지만, 그것이 자신의 아내에 대한 것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그는 지금까지 여섯 번 결혼했지만, 그와 결혼한 여자들은 전부 처참하게 살해되거나 실종되곤 했다. 차라리 농담 같은 음험한 소문이 떠돌았고, 그 소문 덕에 그는 몇 년 동안 독신으로 생활하고 있었다. ……내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물론 나도, 그 소문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었다. 어느 정도까지가 진실인지도.
 
 “아, 알고 있어. 그런 소문쯤. 그런데 그게 뭐, 뭐가 문제가 되는데.”
 
 나는 살짝 더듬거렸다. 말이 똑바로 이어지질 않았다.
 천아는 어이없다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한 순간 그 눈빛이 살짝 흔들리고, 천아가 잠시 움찔했다. 말도 안 된다는 표정으로 입을 벌렸다가, 어금니를 질끈 깨물고 나를 향해 다가왔다.
 식장 안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아무도 그녀를 막지 않았다. 나 역시 그 결연한 표정에 압도되어서, 그녀가 손을 들어올리는 것을 보고도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짝-! 하고 커다란 소리가 울렸다.
 
 “너, 바보인 건 알고 있었지만……, 자기를 판 거야? 말 그대로, ‘몸’을 판 거야?”
 
 한 순간에 식장 안이 시끄러워졌다. 그 뉘앙스에 당황한 사람들 때문이었다.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던 날 대신해서 긍정한 것은, 베로스였다.
 
 “그렇지. ‘몸과 마음을 바쳐 헌신’하기로 한 대신, 네가 평생 지내기에 충분할 돈을 주기로 했지. 흔해빠진 구매혼購買婚이다.”
 “너, 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이번에는 내 외침이 들리지 않게 된 모양이다. 천아의 눈이 베로스를 향했다. 관심을 받아 기쁜 듯 베로스는 씨익 웃어보였다.
 
 “왜 그렇게 놀라는 표정이지? 금화 한 닢에 자기를 팔아치우고 싶어 하는 인간은 언제든 어디든 있다. 이 여자는 그럭저럭 튼튼하고, 심지도 굳은 편이라 꽤 비싼 값을 해 주겠지. 무엇보다 자기에게 합당한 값을 매길 만한 상대를 정확히 찾아내는 현명함도 있어. 그래서 기꺼이 값을 치러준 거고, 넌 그 대가로 편안히 살 수 있겠지. 이런 여자를 보호자로 가질 수 있었던 자신의 행운에 감사하는 게 어때?”
 
 연극적이기까지 한 그 어조에 천아는 한 순간 질린 표정을 지었다. 이야기를 듣고 있던 사람들 중에서도 어이없어하는 사람이 나왔지만, 베로스는 미소를 지우지 않은 상태로 계속 말했다.
 
 “새삼스럽게 당황하는 건 하등한 생물이라는 증거다. 인간이란 욕망과 기만과 논리로 움직이는 생물이잖나. 그렇다면 기만을 하지 않는 내 쪽이 우월하지 않을까?”
 “…….”
 
 어디선가 들었던 이야기에 천아는 입을 열지 못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어쩌면 이 둘은 닮은꼴인 게 아닐까. 비슷한 세계관을 갖고 있는 게 아닐까. 천아는 자기혐오 탓에 냉혹한 세계를 부정하지만, 베로스는 그 세계를 기쁘게 받아들이고 있는 정도의 차이밖에 없는 건 아닐까. 천아의 말대로라면, 쥐님 정도로 우월한 것뿐이지만.
 한참 동안 입을 다물고 있던 천아는, 간신히 입을 열었다.
 
 “그래, 애초에 네가 문제인 게 아니지. 어떤 바보가 나쁜 거니까!”
 
 천아는 다시 한 번 손을 들어올렸다. 뺨에 화끈거리는 충격이 스쳐간다. 나도 몰래 질끈 감았던 눈을 뜨자, 천아는 눈물이 잔뜩 고인 눈으로 날 올려다보고 있었다.
 
 “네가 나쁜 거야! 저런 소리 하는 놈이랑 결혼하려고 했다고? 날 구실로 삼아서? 내가 그런 소리 하면, 넌 항상 바보처럼 헤실거리면서 ‘어쩌면 그럴지도 모르지만, 세상이 그렇게 우울하기만 한 건 아냐. 잘 될 거야.’라고 말했었잖아!”
 
 물론 그랬었다. 천아가 좌절할 때마다 나는 그렇게 말해왔었다. 언제나, 단 한조각의 의심도 품지 않고, 그렇게 말했었다.
 
 “……천아 네가 말했던 대로, 지친 거야. 의심이 늘고, 불안이 늘고, 견딜 수 없어졌어. 어쩌면 말야, 나는 너보다도 세상을 몰랐던 거야.”
 
 나는 그럭저럭 능력이 있는 편이었다. 사람들에게 호감을 사는 용모였고, 독학으로 쌓은 교양으로 가정교사가 될 수 있었고, 어떤 환경이든 적당히 적응할 수 있었다. 자기에게 한 약속을 지키면서 살 수 있었다. 하지만 그건 혼자 있을 때만 가능한 일이었다.
 
 “그럼 그냥 날 내쫓으면 됐잖아! 이런 바보 같은 짓을 할 필요는 없잖아!”
 
 약간 어이가 없어져서, 나도 몰래 웃고 말았다.
 
 “그런 게 가능할 리가 없잖아.”
 
 힘들었다. 정말로 힘들었다. 좋아한다는 기분만으로 살아나갈 수 있을 만큼 세상은 만만치 않다. 천아가 몇 번이고 말했던 대로, 마모되지 않는 애정 같은 건 존재할 리가 없다.
 하지만 그래도 천아의 곁에 있고 싶었다. 어떻게 해도 스스로를 좋아할 수 없는 그녀가 좋았다. 자신이 가진 어른의 기준이 너무나 높은 탓에, 어떻게 해도 어른이 될 수 없음에 절망하는 소녀가 좋았다.
 나는 세상을 얕보고 있었다. 혼자서 어떻게든 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지만, 그래도 가능하게 하고 싶었다.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천아를 행복하게 해주고 싶었다.
 천아가 단호하게 결정지었다.
 
 “그럼 당장 따라 나와! 만약 네가 이 이상한 놈 곁에 남아서, 어떻게 되거나 하면 나도 죽어버릴 테니까! 그렇게 되는 건 싫을 테지! 아니면 지금 여기서 ‘널 싫어한다’고 말하든가!!!”
 “……뭐야 그거, 협박이 이상하잖아…….”
 “확인하는 거야!”
 
 천아의 얼굴은 새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나라는 인간이 내게는 소중하지 않을지 몰라도, 너에겐 소중할지 모른다고 생각해서…… 확인해보려고 하는 거야!!!”
 
 아, 안되겠다.
 나는 나도 몰래 주저앉고 말았다. 그것을 거절로 생각한 모양인지 천아의 얼굴이 하얗게 질린다.
 
 “아, 아냐! 그게 아냐! 그, 그냥…… 다리에 힘이 빠져서 못 걷겠어……. 우, 우아아. 가, 갑자기 눈에서 땀이……”
 
 천아가,
 손을 뻗었다.
 손을 붙잡았다.
 있는 힘껏 당겨졌다.
 그 손에 이끌려 일어섰다.
 그 손을 잡고 달리기 시작했다.
 
 
 멍해진 정신으로 주위를 살폈다. 당황한 베로스가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신부를 붙잡으라고 소리쳤다. 사람들이 달려들었다. 그리고 어딘가에서 발이 걸린 것처럼 쓰러져 나갔다. 뒤를 돌아보자, 머식 언니가 생글거리며 웃고 있었다.
 안면이 있는 얼굴 몇몇이 발을 걸어 추적자들을 방해하면서, ‘환상회랑’의 이름으로 나와 천아를 축복해주었다.
 
 
 웨딩드레스는 너무 길어서 도주에 불편한 대신에,
 빨리 달리면 바람에 흩날려서 어쩐지 기분이 좋았다.
 
 
 

5. Epilogue.

 
 “……원망 안 해?”
 “원망할 리가 없잖아.”
 “……나랑 같이 있으면, 힘든 건 사실이라고 말했잖아.”
 “음. 그렇지만, 오늘은 너무 행복했는걸. 에너지를 잔뜩 충전해서, 앞으로 1억 2천년 정도는 지치지 않을 수 있어.”
 “……저기.”
 “응?”
 “나, 자신은 없지만, 할 수 있는 건 할게.”
 “고마워. 하지만 아프지 않게, 무리하면 안 돼.”
 “아, 알고 있어!”
 “그리고 몰래 스크램블 에그 연습한 건 좋은데, 한 번에 열 개씩 깨 넣고 연습하는 건 그만둬. 계란 값으로 파산할 거야.”
 “아, 알고 있었던 거야?!”
 “천아가 하는 일 중에 내가 모르는 건 없는걸! >_<”
 
 
 “소동 이후, 2주일 만인가.”
 “그렇네. 잘 지냈어, 베로스?”
 “정말로 흥미진진한 결혼식이었다. 그런 각본으로 용케도 이야기가 성립되는군.”
 “이야기를 해괴하게 만든 건 너잖아! 뭐야 그 3류 악당 흉내는!”
 “그런 거야 갈등을 고조시키기 위한 장난질이지. 머식 누님께서 전하라고 하시더군. 그건 그렇다 치고, 그 아가씨와는 어떻게 되어가고 있나?”
 “잘 되고 있어! 오늘은 아침에 스크램블 에그를 만들어서 도시락 싸줬는걸! >_<”
 “……그 난리를 피운 다음의 결과가 스크램블 에그인가.”
 “엄청난 발전인걸!”
 “네가 그녀 나이일 때와 비교하면, 확실히 엄청난 진보겠군.”
 “아우- 옛날 얘기는 하지 마!”
 “하나만 묻지. 네가 그녀에게 집착하는 건 어째서지?”
 “응?”
 “그녀가 네게 호의를 품게 된 건 분명하지. 그 정도 지극정성으로 달라붙어 있었으니까. 그런데 네가 그녀에게 호의를 품게 된 이유는 불명이다. 그 장난질에 거금을 투자한 입장으로서, 이 정도 의문에 대답을 구하는 건 불가능하지 않다고 보는데.”
 “흐음……, 역시 나랑 닮았기 때문일까? 엄청 귀엽잖아! >_<”
 “그 나이대의 너는 귀여운 면이라곤 전혀 없었다만.”
 “(으득). ……그냥 뭐, 내게는 결여되어 있는, 아니면 내게도 있는 뭔가가 저기 빠져나와 있는 것 같은 느낌인 거야. 도저히 가만 내버려 둘 수 없는 거지”
 “서로 상처를 핥는 것 같은 관계는 현명하지 못하다만.”
 “그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모르는구나.”


終.

 
 

6. 후기.

 
 “안녕하세요, 머식 언니.”
 “안녕. 지난번의 결혼식은 잘 봤단다. 에이전트 ‘꽃파는 소녀’로서 감상을 말하자면, [도폭선 위에 피어난 장미 -뷁커드빠x휘긴-]에 필적하는 명작이었어. 이름을 붙인다면, [음울한 빛으로 시드는 백합 -호워프x미르천-] 정도일까.”
 “아하하하, 지나친 칭찬은 몸에 좋지 않대요. 그보다 무슨 일이세요?”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서.”
 “에? 뭔데요?”
 “네가 그녀를 대하는 모습에 조금 불안감이 느껴져서 말이야.”
 “?”
 “혹시 너는, ‘그녀가 자립하지 못하도록 만들어서’ 그녀를 계속 붙잡아두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불안감이 든단다.”
 “……뭐에요, 그건.”
 “에이전트 ‘인간♡실격’이, ‘호워프 언니가 요즘 얀데레 타령을 하고 다녀요! 저 무서워요!’라고 말하고 다니거든.”
 “……우와, 정말 그 말대로라면, 저는 일부러 천아를 데리고 다니면서 고생한 거네요? 그래서 천아가 의지할 사람이 저밖에 없게 만들고? 아니, 어쩌면 천아가 천애고아가 된 것도 저의 비밀공작이라든가? 와아, 어쩌면 재밌을지도?! *_*”
 “신부탈취극을 경험해 보고 싶다는 그 희망에 의해 시작된 그 소동도, 의미가 달라지겠지. 개인적으로는 그런 게 아니면 좋겠다만.”
 “왜요?”
 “난 얀데레가 싫단다.”
 “(정색) 저 얀데레 아니에요. 절대로절대로절대로 얀데레 아니에요.”


(정말로) 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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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파르마콘 2008/04/10 18:39 # 답글

    .....
  • 인간♡실격 2008/04/10 18:39 # 답글

    파르마콘님.
    원츄 (..)
  • 호워프 2008/04/10 18:47 # 답글

    재밌는 글입니다.
  • 인간♡실격 2008/04/10 19:06 # 답글

    호워프님.
    진지한 이야기지만 이 단편에 등장하는 호워프 언니는 제가 판갤에서 본 이미지를 최대한 살리려고 노력한 결과였답니다. 친절하고 마음이 넓고 배려심이 많은 성격을 연출하고 가정교사로 설정하는 것으로써 교양미를 강조하는 등...
    그런데 한창 쓰는 동안 호워프 언니가 판갤에서 '얀데레 얀데레 얀데레 데레데레-' 하셔서 이미지에 혼선이 발생했... (..)
  • 아케트라브 2008/04/10 19:56 # 답글

    넵 판백대는 더럽습니다.ㅠㅠ 머식의 손에 일비일회하는 판갤이라니
  • 인간♡실격 2008/04/10 22:17 # 답글

    아케트라브님.
    저는 원래 남의 손에 일희일희 하는 걸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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