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작하면서.
올해 7월, 한국산 ‘라이트노벨 브랜드’를 표방하며 시드노벨이 등장했다. 임달영은 그동안 받아왔던 부당한 평가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시드 노벨 이전 가장 라이트노벨에 가까웠던 작품 스트레이를 낸 반재원이 있었으며, 다소 매니악한 작풍을 갖고 있던 오트슨이 오히려 가장 라이트노벨답다는 이야기와 함께 호평을 받았다.
초기 3작에 비해 이후의 작품에 대한 평가가 조금 박하긴 해도, 이 시도에 의해 라이트노벨이라는 단어와 판매를 의식한 출판이 조금 더 눈에 띄게 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둘 사이의 입장과 의미는 좀 다르지만, 독자의 구매욕을 높이려는 시도라는 점에서 나름 높게 평가하고 싶다.
어쨌든 시드노벨이 우선 방아쇠를 당긴 이후, 이런저런 곳에서 비슷한 시도가 시작되었다. 그 중에서도 젬스노벨은 시드노벨과 마찬가지로 라이트노벨 브랜드를 표방하며 등장했고, ‘양산형 라이트노벨’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여러 가지로 해석해 볼 수 있는 이야기지만, 우선 여기에서는 넘어가도록 하자.
다행히도 첫 번째 출간작과 현재 준비되어 있는 작가진을 공표한 다음에는 그 이야기가 좀 잠잠해질 수 있었다. 나름 괜찮다 싶은 라인업이었기 때문인데, 그 첫 번째 출간작 중에서 가장 화제가 되었던 것이 ‘검은 가시나무 광대’의 작가 송성준의 신작, ‘안테노라 사이크’였다.
검은 가시나무 광대는 어떤 이야기였던가.
작가의 전작 검은 가시나무 광대는 이스루하만이라는 가상의 세계를 배경으로 한 에픽 환타지 소설이었다. 흔히 바보멍청이나 꼴통, 혹은 지나치다 싶은 위선자로 묘사되곤 하는 성기사 주인공 타쉬어드와, 정체불명의 소녀 키유아의 여행담이었다. 꽤 호평을 받았지만 3권 이후로는 출간되지 않았다.
신과 차원, 종족, 마법 등의 요소에 대한 세심한 설정을 기반으로, 인물과 세계에 대한 진지한 묘사가 일품이었다. 성기사라고 하는 기묘한 업에 명백히 존재하는 모순과 그것을 극복하려고 하는 주인공 타쉬어드의 태도를 긍정적으로 묘사하고, 정체불명이라는 말 밖에 묘사할 수 없는 신비한 소녀 키유아와의 교감 역시 성실하게 그리고 있었다.
그 묘사력은 액션 부분에서도 빛을 발했는데, 그림으로 그릴 수 있을 듯한 정밀한 묘사를 하면서도 속도감을 잃지 않는 솜씨가 괜찮았다. 특히 히로인인 키유아가 우아한 체술을 기반으로 한 전투를 하면서도 어딘가 초월한 듯한 ‘신비감’과 ‘강력함’을 느끼게 하는 부분은 확실히 뛰어났다.
약점이라고 할 만한 부분도 물론 있었다. 가장 큰 문제는 작품의 ‘끝’이 나지 않았다는 것. 어떤 형태로든 끝나지 않은 작품이 있다는 건 결코 좋은 일이 아니다. 장대한 서사를 목적으로 했던 듯한 작품이 그렇다면 더욱 그렇다. 이 부분엔 출판사나 작가, 혹은 양측 모두의 사정이 있으리라 생각하지만…….
작품 내의 이야기로 되돌아가자면, 사건의 전개 속도가 그리 빠르지 못했다. 세심한 묘사력이 장점이기 때문에 더욱 그러한데, 빠른 스토리 전개를 즐기는 사람에게는 묘사가 과다하다고 느껴질 것이다. 물론 그 속도에는 장점과 단점이 있고, 사람의 취향마다 갈리는 문제이긴 하지만, 그 저울의 지침을 조금 더 평균에 가깝게 유지할 수 있다면 좋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안테노라 사이크는 어떤 이야기인가?
분량 : 후기 포함 500P. 후기 3P. 한 페이지에 24행.
일러스트 : 컬러 표지, 권두 컬러 4P, 흑백 삽화 5P.
가격 : 5900원.
작품의 첫 인상은 이러했다.
“헤, 헤비 노벨?!”
홍보에도 적극적으로 활용되고, 실제로 화제가 되기도 한 그 분량은 꽤 인상적이다. 책이 작으면 작을수록 두께가 더 부각되는데, 확실히 두꺼운 분량이다. 제본이 뜯어지지 않을까 걱정이 될 정도.
표지의 퀄리티는 꽤 괜찮은 편으로, 안쪽의 컬러 네 페이지도 괜찮다. 다만 본문의 삽화는 그렇게까지 많지는 않다. 한 권에 삽화가 다섯 페이지라면 그럭저럭 이라고 해야 하겠지만, 책이 두꺼운 탓에 삽화 부족이 더 눈에 띈다. 300P의 책이라면 60P마다 삽화 한 장 꼴인데, 500P의 책이라면 100P마다 삽화 한 장이니까. 전반적으로 꽤 빽빽한 느낌.
현대를 배경으로 한 액션물로서, 현대/미래 병기가 다수 등장하고 있기 때문에 일상적이지 않은 용어도 꽤나 많이 눈에 띈다. 그다지 가벼워 보이지 않는다는 첫 인상이지만, 다행히도 읽기 힘든 작품은 아니다.
장점.
1. 매력적인 등장인물.
주인공의 이름은 지효성. 어떤 조직에 의해 ‘망각의 함’이라 불리는 곳에 감금되어 있었다. 그를 구해내기 위해 히로인이 망각의 함에 침입하면서 작품이 시작된다.
샤프하고 귀여운 느낌의 미소년으로, 히로인과 함께 있을 때는 꽤 큐트하고 귀여운 면이 눈에 띈다. 최초에는 기억을 잃고 있는 탓에 멋있는 장면은 전부 히로인에게 양보하고 있지만, 이후 싸울 결의를 하고 훈련을 시작하면서부터 점차 자신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히로인에게 모든 것을 의존해야 하는 피보호자의 입장에서, 점차 대등한 입장으로 상승해가는 것이 재미있다.
특히 후반부에서는 그야말로 폭풍간지! 읽고 있는 내내 ‘반갑다 소년 난 간지폭풍이라고 한다-’나, ‘1분만에 12대를?’이나,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같은 말 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히로인의 이름은 요세. 표지를 장식하고 있는 그 아가씨. 주인공인 효성과는 오래된 인연이 있다. 효성에게 있어서는 유일한 가족 같은 존재로, 1권에서 가장 비중이 큰 인물이기도 하다.
비교적 전형적인 주인공 상에 가까운 효성과 달리, 철저하게 갭을 느끼게 하는 캐릭터 조형이 인상적이다. 효성에게 무조건적인 애정을 선사하는 소녀이며, 냉정하고 철두철미한 프로페셔널이고, 그리고 역시 사랑스러운 소녀이기도 하다. 데이트 장면에서는 소녀의 귀여움이 대폭발하고, 그 다음에는 마녀와도 같은 잔혹함과 광기를 드러내는 등 복잡하고 다중적인 면모가 섬세한 묘사력으로 잘 표현되어 있다.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바로 순일. 어떤 조직의 특수요원인 그는 이야기의 진행에 의해 효성과 요세와 적대하게 되는 강적이다. 하지만 미운 점은 별로 없고, 오히려 제3의 주역이다 싶을 정도로 호의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그와 그의 조직은 작품 내에서 인류를 위한 일종의 필요악으로 기능하며, 그는 그런 자신에 대해 긍지를 갖고 있다. 그리고 그 점이 세계에 있어서 효성과 요세가 갖는 일탈성과 위험성을 부각시키고 동시에 세계가 평온하지 않음을 느끼게 하는 효과를 내고 있다.
그러나 그런 점보다도 중요한 점은 역시 그의 성격. 입도 성격도 조금 거칠지만, 전반적으로 진지하고 조용한 이 작품에서 분위기 메이커인 그는 확실히 눈에 들어오는 존재이다.
명언집1 : 웃기지 마, 인간이 못 죽이는 괴물 같은 건 없어.
명언집2 : 마음에 둔 남자를 위해서 악의 조직과 맞서 싸우는 절세미녀! 캬아~ 간지나서 못 참겠구만! 잭 블랙과 함께 길이길이 남겨야 할 인류의 보배로세.
명언집3 : 자아, 난 앞으로 몇 걸음이나 전진할 수 있나! 그야 당연히 건방진 천사의 하트에 잊지 못할 천둥벼락을 꽂아줄 때까지! 나에게 반해주면 더 좋고!
……유쾌한 녀석이다.
2. 작렬하는 액션.
이 작품의 첫 장면은 요세가 용병들과 함께 망각의 함을 기습하며 시작된다. 삼엄하기 그지 없는 경비를 뚫고 돌격하는 이 장면은, 말하자면 헐리웃 액션 영화의 초반 5분과 같은 것이다. 이 시간 동안 히로인인 요세는 자신의 능력을 전폭적으로 드러내며 강렬하고 인상적인 액션으로 독자들에게 이 작품의 분위기를 강력하게 어필한다. 진지하고 성실한 ‘현실’의 묘사와 대비되는 초월적인 액션의 묘사는, 이 작품에 대한 기대감을 한껏 돋운다.
주인공인 효성이 깨어나면서 이 활극은 잠시 규모를 축소시킨다. 어떤 계기로 인해 싸울 것을 결심한 효성은 싸우기 위해 요세의 훈련을 받게 되는데, 이 부분은 강해지기 위한 토대를 닦는 것이기도 하지만 그 외의 의미도 갖고 있다. 효성과 요세가 서로에 대해 이해하기 위한 시간이며, 동시에 현실적인 기반을 닦는 시간이기도 한 것이다. 이 과정의 성실한 묘사는 이후 그들이 보여주게 되는 슈퍼 액션을 더욱 더 부각시킨다.
그리고 연속적으로 전투가 벌어지게 되는 후반부에서, 이 규모는 조금씩 확장되기 시작한다. 적이 조금씩 강력해지는 것에 의해 싸움은 조금씩 격심해지고, 그 긴장감이 계속 유지되는 상황에서 마침내 인물들은 각성한다. 독자가 압도될 수밖에 없는 그 강력함은, 그 훈련과 확장되어 가는 전투를 통해 그 대항자의 강력함을 충분히 묘사해왔기 때문에 의미를 갖는다.
액션 소설에서 배틀의 존재는 필요불가결. ‘강함’에 대한 동경이나 ‘갈등의 해결’, 또는 ‘인상적인 연출’등을 위해서 ‘강하다’는 느낌은 반드시 필요하게 된다. 그러나 그런 부분을 인물의 대사나 설정 몇 줄로 넘기는, 혹은 독자의 선지식에 기반해 넘기곤 하는 경우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 작품에 있어서는 분명히 다르다. 진지하고 세심한 묘사는 작품의 ‘기반’을 형성하고, 그리고 그 기반을 넘어서는 압도적인 힘을 묘사해내고 있다. 그리고 그 힘은 반대로 인물의 업을 드러내고, 캐릭터가 짊어진 것의 무게를 드러내는 데도 성공하고 있다.
3. 세심하게 묘사된 인물들과, 그로 인해 성립하는 로망.
작품의 분위기는 그리 가볍지 않다. 히로인인 요세는 일종의 해결사로서 일하는데, 그녀의 주된 활동/거주 지역은 슬럼가에 가깝다. 그녀의 보호를 받게 된 효성 역시 자연스럽게 그 안에 끼어들게 되는데, 당연히 그 과정이 밝고 명랑하게 처리될 리 없다.
작품의 초반부, 요세는 쉽게 도울 수 있는 사람에 대해 손을 내미는 것을 거부한다. 그녀가 상냥하고 친절한 인물인 것은 분명하지만, 그녀는 악의가 넘쳐흐르는 세상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캐릭터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에 대해 설명하는 장면이지만, 캐릭터의 성격을 묘사하기 위해서 기능하는 장면이기도 하다. 호의가 그대로의 호의로 돌아올 리 없다는 걸 알고 있는 그녀는, ‘이웃이 죄를 짓게 만드는’ 것도 위험한 짓임을 알고 있는 것이다.
작가는 얄팍한 현실 인식의 위험성을 잘 알고, 인물들의 움직임을 현실적으로 묘사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작중에 등장하는 특수기관들은 아무도 없는 도로 위에 닌자처럼 느닷없이 나타나지 않는다. 자신들의 신분을 위장하고, 그것을 들키지 않기 위해 다양한 뒷공작을 행한다.
이런 식의 ‘보이지 않는 흐름’은, 얼핏 큰 의미가 없어 보이지만 세계 내에서의 정합성을 갖추고 독자에게 받아들여지기 위해서 꼭 필요한 장면이다. 대부분의 독자들은 묘사나 문장 하나하나 보다는 눈에 들어오는 ‘멋있는 장면’을 기대하지만, 실제로 그런 장면에 힘을 발휘하는 것은 그런 작은 것들이기 때문이다.
인물 묘사에 있어서도 그렇다. 히로인인 요세를 보자.
작가는 ‘신비로운 히로인’ 상을 좋아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그녀는 실로 인상적으로 만들어져 있는 캐릭터다. 상냥하고 소녀적이지만, 남성에게 편리한 캐릭터로 만들어져 있지는 않다. 접근을 거부하지는 않지만, 일정 거리 이상 다가서기는 어려운 그 느낌이 잘 살아 있다.
그리고 그 캐릭터가 이런 세계에 맞물려 독특한 느낌을 선사한다. 그녀는 세상의 어두움을 충분히 알고 있으며, ‘정정당당한 싸움은 이길 준비를 안 해놓은 사람만 하는 거야’라고 말할 정도로 철두철미한 인물이다. 목적을 위해서라면 사람을 죽이는 것도 전혀 꺼리지 않는다. 적들이 바보이기 때문에 천재 소리를 듣는 것이 아니라, 충분히 똑똑한 적들을 두고도 뒤를 잡히지 않을 만큼 현명하기 때문에 살아 있다.
그런 토대가 있기 때문에 그녀의 소녀적인 면이 부각되는 장면은 몇 배로 인상적이 되고, 그에 의해 다시 그녀의 냉정한 면이 가져오는 인상도 강력해진다. 그리고 그녀에게 닿으려 하는 효성의 모습도 응원하고 싶은 대상이 되고.
갭에 의해 캐릭터에 대한 감정 이입을 높이는 것은 흔한 방법이지만, 단순한 패턴화에 의해 조형된 인물과 차곡차곡 쌓아올린 기반을 가지고 묘사되는 인물의 농도는 전혀 다르다. 그 부분에 있어서 조금은 집요하다 싶을 만큼 성실한 묘사가 장점이 되는 것이고.
4. 다양한 가능성을 숨기고 있는 세계관.
작품의 제목에도 사용되고 있는 안테노라는 단테의 ‘신곡’에 나오는 지옥의 이름이다. 물론 본문에서는 당연히 다른 의미로 사용되고 있는데, 지옥이라기보다는 도라에몽에 나오는 거울 세계 같은 느낌을 받았다. 1권에서는 일정 수준 이상의 단서를 주지 않지만, 우선 이 요소가 가장 눈에 띄는 특징일 것이다.
하지만 1권에서 흥미를 끄는 요소는 ‘이세계’보다도 ‘현실 세계’에 모여 있다. 적들의 면모에서 그것이 특히 두드러지는데, 최초에 교전하게 되는 망각의 함 경비원들은 비교적 상식적인 현대인이다. 이야기가 진행되며 ‘갱’도 등장한다. 그들은 현실적인 폭력의 사자로서, 어디에나 존재할 수 있는 ‘악의’를 드러내며 작품의 분위기를 이끌어간다.
훌륭한 액션물답게, 이 이야기는 차츰 가속을 시작한다. 중반에서 종반에 이르기까지 등장하는 적들은, 현대의 수준을 뛰어넘은 무기로 무장하고 있다. 그들이 사용하는 오버테크놀러지에 대해 정확한 언급은 없지만, 본문에서 짐작할 수 있는 바로 그것은 ‘외계기술’ 내지 ‘인외기술’이다.
감상 중 몇 번이나 헐리우드 액션물을 언급했는데, 이 부분에서도 그런 느낌이 강해진다. 맨 인 블랙이나 크리쳐 영화에 등장할 법한 비밀조직. 이 B급 펄프의 느낌이 너무나도 매력적이다. 하물며 마지막에 등장하는 적은, 더더욱 상상을 초월해서 무려 ‘ ’!
중요한 것은 이런 요소들을 다루는 작가의 솜씨다. 다양한 요소들을 혼합하는 건 찔러볼만한 요소를 늘리고 작품의 색을 풍부하게 만들 수 있지만, 자칫 잘못하면 밸런스를 잃기 쉽다. 설명이 지나치게 많아져 설명과 이야기의 균형이 무너지고, 기반이 다른 힘의 충돌로 이야기의 정합성이 무너지거나하는 것이다.
작품 내에서는 이 균형이 잘 잡혀 있는 편으로, 마법/현대병기/미래병기/초능력 등이 멋대로 섞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야기가 흐트러지지 않는다. 초월적인 힘을 가진 존재는, 그에 해당하는 적에 의해서 제약 당하고 있는 것이다. 본문에서 묘사되어 있는 싸움과, 본문에서 묘사되어 있지 않은 싸움을 추측하는 것으로 독자는 세계에 존재하는 다양한 ‘힘’을 추측할 수 있게 된다.
단점.
1. 사실은 아무 것도 알려주지 않는다.
놀라운 이야기지만, 안테노라 사이크 1권에서 독자가 알 수 있는 사실은 거의 없다. 500P를 넘는 분량인데 이게 무슨 이야기인가 하겠지만, 실제로 그렇다. 기반 세계의 대략적인 흐름이라든가, 요세나 효성에 대한 개략적인 정보라든가, 안테노라라는 개념에 대한 설명은 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후반부에 폭발하듯 등장한 의문이 너무 많아서 그런 것들이 묻혀버린다.
1권의 완결성이 낮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지만-오히려 하나의 이야기가 일단락되었다는 충족감은 높다-, 적어도 ‘한 권만으로 끝나도 괜찮은’ 이야기는 절대 아니다. 다음 권이 안 나오면 돌아버릴 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
2. 눈에 띄는 ‘신선함’이 보이지 않는다.
라이트노벨은 일종의 컨셉 상품이기도 하다. 재미있는 컨셉을 갖고 있다면 문장력이나 묘사력이 부족해도 읽을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작품의 특징을 짧고 간략하게 설명할 수 있는가 아닌가는 꽤 중요하다. (예를 들자면 건퍼레이드 마치를 ‘누님에게 샤프로 찔려 죽는 게임’이라고 소개하거나, 풀메탈패닉을 ‘군대 바보가 메카를 타고 활보하는 소설’이라고 소개하는 것.)
그런데 이 작품에서는 그런 특징을 잡아내기가 어렵다. 안테노라라고 하는 개념이 설명되기는 했지만 그게 정확히 어떻게 기능하는 가는 1권으로 알기가 어렵고, 오히려 후반부에 이런저런 의문이 쏟아지는 탓에 명확한 특징을 발견하기는 어렵다. ‘액션과 인물 묘사가 죽이는 소설’이라고 설명하고 싶지만, 세심한 묘사=지루하다고 인식하는 사람도 존재하는 게 사실이니까. 하이컨셉에만 집중하는 건 좋지 않지만, 컨셉이 명확히 눈에 잡히지 않는 것도 조금 아쉬운 점이다.
3. 주인공인 효성의 묘사에 부족함을 느낀다.
히로인인 요세에 대해서 사실상 비중이 제일 높다고 설명했는데, 그것은 반대로 효성의 비중이 낮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사실 그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고, 이 1권이 그가 주인공이 되기 위한 이야기라는 걸 생각해보면 넘어가도 좋겠지만…….
문제는 역시 효성이 갖고 있는 ‘자신에 대한 불안’이라는 부분이 잘 묘사되지 못했던 것이다. 요세에 대한 의존과, 그에 의한 성장 등에 의해서 가려졌기 때문일까. 압도적인 임팩트의 각성 이후 다시 한 번 무엇인가를 깨닫게 되는 장면이 있는데, 저 요소가 잘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에 그 장면의 힘이 약해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큰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전반적으로 세심한 묘사가 장점이었기 때문에 약간 아쉬운 느낌이 든다.
마무리하면서.
시드노벨이나 젬스노벨 등 최근 들어 라이트노벨 브랜드가 눈에 띄게 된 것은 한국의 오덕 파워가 강해져서(-_-)라기 보다는, 기존의 대여점 시장과 다른 판매용 시장에 도전해야 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라이트노벨 브랜드를 만든다고 알려진 회사는 그 외에도 존재하며, 라이트노벨이라는 타이틀을 달지 않았어도 비슷한 형태를 취하고 있는 회사도 존재한다. 이 회사들이 이렇게 등장하는 이유는 라이트노벨에 먹을거리가 많아서(-_-)라기 보다는, 기존의 방식으로는 안 된다는 위기감이 크기 때문인 것이고.
기존의 대여점 시장에서 벗어나서 라이트노벨, 혹은 판매를 중점으로 하는 판매용 시장에 도전하는 작가와 출판사는 결국 오래된 명제에 다시 도전하는 것이다. ‘좋은 것을 만들면, 팔린다’라는 믿음에 대해서.
본문에서 작품에 대해 이야기할 때, ‘세심한/정밀한/진지한’과 ‘기반/토대’등의 단어를 자주 썼다. 하지만 그런 단어를 자주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500P라는 상당한 분량인데도 불구하고, 작품의 밀도는 굉장히 높다. 참신하고 기발한 발상이 눈에 띄지 않는다고 말하긴 했지만(뜨악한 반전이 하나 있긴 하다. 말 그대로 대쇼크), 이 정도의 밀도로 묘사되는 액션과 로망은 충분히 그 의미를 새롭게 한다.
“세상에서 답을 찾으려면, 세상에 던질 자신의 질문부터 올바르게 만들어!”
저 대사는 작중에서 효성이 듣게 된 말이었다. 작품을 재독하는 동안, 계속해서 저 말이 머릿속에 깊게 각인되고 있었다. 성실하고 진지한 태도가, 세심하고 정밀한 묘사가, 격렬하고 힘 있는 액션이 내게 물어오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좋은 것을 만들었습니다. 팔릴 수 있을까요?’
작가는 성실하고 진지하게 이야기의 토대를 쌓고, 그것을 기반으로 사건을 연출하며, 그것에 의해 인물들의 다양한 면모를 드러내고 있다. 상당한 분량인데도 불구하고 가격상승 없이 한 권으로 발매해 준(분권은 사실상 어려웠으리라 생각하지만) 출판사에게도 호감이 간다.
여러 가지로 노력했음이 엿보이는 좋은 책이다. 정말로 재미있었다. 잘 팔리기를 빈다.




덧글
요르다 2007/12/01 01:20 # 답글
오늘 사러 가야... 정말 좋은 리뷰네요.
자이드 2007/12/01 02:10 # 답글
오 리뷰보고 마음을 굳혔습니다. 비록 실탄은 없지만 다음주라면 -ㅅ-+
마법시대 2007/12/01 03:06 # 답글
더 기대되네요. 어서 도착해야...
제로데몬 2007/12/01 04:21 # 답글
잘보고 갑니다. 휴일날 보고 질러야 겠꾼요.
나우 2007/12/01 17:16 # 삭제 답글
기말고사 끝나고 사야지....(시험은 싫어!!!!)
시오、 2007/12/01 19:17 # 답글
아 미치겠어요 다음권 언제나오니..ㅠㅠㅠㅠㅠ
세피로트 2007/12/02 08:35 # 삭제 답글
좋은것을 만들었으니 저라도 사드리겠습니다. 우후후후....
인간♡실격 2007/12/04 01:13 # 답글
요르다님 // 구입하신 것 같네요. 재미있으시면 좋겠어요. ^^ 그리고 리뷰를 너무 좋게 평가해주셔서 정말 감사. ㅠ_ㅠ 이오공감에 올라가 있었더니 그동안 쌓인 히트수의 1/3 정도가 하루만에 오르더군요.자이드님 // 괜찮다고 생각해요. 읽어보세요. >_<
마법시대님 // 배송이 늦어지고 있다는데 지금쯤은 받으셨을런지요. 저는 틀림없이 하루쯤 전에는 책 나올 거라고 생각해서 일부러 예약구매는 쳐다보지도 않았죠. (..)
제로데몬님 // 재미있으시기를. ^^
나우님 // 기말고사도 잘 보세요. ^^;;;
시오、님 // 정말 다음권 언제 나올지가 걱정이에요. (..)
세피로트님 // 세피로트님께도 취향 직격이길! >_<
Rain 2007/12/04 03:54 # 답글
좋은 말만 써놓은 리뷰에 대차게 낚였군요,이쪽의 감상을 트랙백합니다.
인간♡실격 2007/12/04 04:26 # 답글
Rain님 // 사람마다 보는 눈은 다르기 마련입니다만, 낚였다니 표현이 좀 과하시네요. 아무래도 취향이 전혀 다르신 듯 하니, 혹시 다음에 제가 한 리뷰를 보더라도 참조하지 않으시는 게 좋을 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