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리뷰는 이타카 독자 리뷰어로서 작성한 것입니다. 사인이 첨부된 한정판을 받았습니다, 와아- (..) 평소보다 조금 더 엄격하게 쓰려고 노력하긴 했습니다만, 아무래도 그냥 사서 읽는 분과 동일한 마음가짐이라고는 할 수 없겠지요. 읽으실 때 염두에 두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 | 싸우는 사람 1 - ![]() 이수영 지음, Song, won seok 그림/디앤씨미디어(D&C미디어) 마약을 맞고, 괴물과 싸워야 했던 검노(劍奴) 214번. 자유를 찾아 투기장을 탈출한 그는 도망친 숲 속에서 야수 오쿠거의 습격을 받는다. 살아남기 위해 서로를 죽인 214번과 오쿠거. 공평한 죽음의 신은 그들에게서 절반씩의 죽음을 거두고, 둘의 몸을 하나로 묶어버렸다.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것조차 박탈당한 수번 214번의 장렬한 투쟁. 그것은 살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 |
신작이자 구작
이수영 씨가 성별을 의심 받는(..) 가장 큰 이유는 튀어 오르는 피와 살의 절대량 때문이 아니라, 인물의 감정이 폭발하는 그 순간의 반응이 다분히 ‘남성적’이기 때문입니다. (성역할의 의미가 아닌, 문화적 남성성과 여성성으로 이해해주세요)
사실 작가가 여성이라고 유혈극이 안 나오는 건 아닙니다. 잔혹, 과격과 파격 역시 남성만의 것은 아니고요. 더하면 더했지 절대 모자라지 않습니다. 다만 그 임계점에 도달했을 때의 분출 방식이 조금 다르죠. 인물의 내적 문제가 한계에 달했을 때 외부의 적을 두들겨 패서 해소시키는 방식은 단순한 만큼 호쾌하고, 남성적이라는 인상을 강하게 합니다. 이수영 씨의 작품에 ‘약한 주인공’은 없고, ‘말 한 마디면 될 걸 만화책 세권 잡아먹는’ 답답함도 없습니다.
물론 그 뿐이라면야 태어나기를 단순하게 태어난 남자들이 더 잘 하게 되어 있겠죠(..). 이수영 씨의 진짜 장점은 그런 강인함으로도 극복할 수 없는 절실한 감정을 이야기 속에 잘 녹여낸다는 것입니다. 열심히 싸우고 돌아왔더니 세상과 단절되어 있었던 누군가들도, 너무 강하기 때문에 소중한 것들이 먼저 사라질 수 밖에 없는 누군가도, 망각은 서러운 축복이라는 말과 끝없이 싸워야 했던 누군가도.
『싸우는 사람』은 이수영 씨의 초기 작품 중 하나입니다. 『동방제국기전』과 비슷한 시기에 연재되고 있었던 것 같으니 『쿠베린』과 동시기 내지 그 이전이겠군요.
호쾌함보다는 무거움이 강조되어 있으며, 『사나운 새벽』이나 『Fly me to the moon』과 같은 근작과 비교해보면 훨씬 거칠고 황량한 느낌을 줍니다. 자신이 누구인지 혼란스러워 하는 와중에서도 작은 것들에 정을 주고 다가서며 삶을 찾으려는 감정은 진솔한 만큼 투박하고 조야하죠.
삶과 죽음이라는 (지나치게 노골적이다 싶을 정도의) 주제 선정도 그렇고, 여러 가지로 이수영 씨의 원형을 볼 수 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삶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
이야기는 투기장의 검노劍奴 214번과 함께 시작됩니다. 마약에 중독된 채로 싸움을 거듭해 자신이 누구이고 왜 이곳에 왔는지조차 잊어가고 있는 상태입니다. 돼지가 되지 않고 자신을 잊지 않기 위해 힘겹게 마약을 뱉어내고 버티던 그는, 간신히 기회를 보아 투기장에서 탈출합니다.
추적자들을 피해서 도망치던 그는 죽음의 신을 섬기는 신전 근처에서 야수 ‘오쿠거’의 습격을 받습니다. 살아남기 위해 필사적으로 싸우던 그들은 빈사의 상태에서 함께 의식을 잃고 맙니다.
의식을 되찾은 그들의 앞에 있었던 것은 죽음의 신 데스가움을 섬기는 사제 키나. 그녀는 그들의 절반이 죽음을 맞이했음을 설명하고, 살아남은 절반은 하나로 합쳐졌음을 이야기해 줍니다. 오른쪽에는 인간, 왼쪽에는 야수의 육체가 남은 이심동체의 괴물로 살아남게 된 것입니다.
이후부터 이야기의 흐름은 둘로 나뉘게 됩니다. ‘아이거’라는 이름만 떠올리는(그것이 자신의 이름이라는 확신조차 없이) 그에게 매달려 있던 원혼들을 통해 지금은 잊어버린 과거를 찾아가는 것이 하나. 극도로 희귀한 데스가움의 사제로서 곳곳을 돌아다니며 올바른 죽음을 맞이하지 않은 자들을 쫓아내는 키나와, 그녀의 길에 함께하게 된 아이거와 오쿠거의 이야기가 하나.
주인공인 아이거에게 스스로의 존재가 희박한 만큼, 이야기는 보편적인 서사와 조금 거리를 두게 됩니다. 소설의 ‘주동인물’이 되기에는 아이거가 갖고 있는 것이 너무 없지요.
그가 소망하는 것은 이름이나 가끔 희미하게 떠오르는 과거의 기억들을 찾는 것, 다른 하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두려움과 기피의 대상이 되는 데스가움의 사제 키나를 지켜주고 싶다는 정도입니다. 이런 소망은 사실 자신의 의지로 어떻게 되는 것이 아니어서, 초반의 탈출 이후 아이거는 주도적으로 사건을 이끌어가고 적극적으로 대응하며 상대역과 맞부딪히는 역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작중에서 아이거라는 인물 이상으로 중요하게 이야기되는 것은 키나, 그리고 그녀가 섬기는 죽음의 신 데스가움입니다. 키나가 이야기하는 데스가움의 교리는 죽음에 대한 것이기에 삶에 대한 것이 되며, 아이거의 꼬이디 꼬인 과거 이야기는 거기 얽힌 사람들의 죽음과 삶을 동시에 보여줍니다.
제목에서 말하는 『싸우는 사람』이 아이거를 말하는 것은 명백합니다. 그러나 이 싸움은 어떤 강적과의 승부가 있고 그 결과를 통해 어떤 고귀한 가치가 탄생하는 드라마틱한 싸움이 아니라, 삶과 죽음의 간극에서 필사적으로 발버둥치는 인간의 모습입니다.
액션은 분명히 존재하지만 그림이 되는 컷들이 화려하게 교차하는 그런 액션이 아니라, 볼품없지만 너무 처절해서 보고 있으면 눈물이 나올 것 같아지는 롱테이크 같은 느낌이에요. 어찌 생각하면 이 작품의 목적은 아귀가 딱 들어맞는 근사한 서사보다도 이런 장면 장면에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인간과 짐승의 대비
아이거가 죽음의 신에 대해 배워나가는 과정에서 매우 재미있게 활용되는 것이 야수 오쿠거의 존재입니다. 원래 인간과 짐승이 하나로 합체하면 강해져야 하는 것이 관습이지만, 이 작품에서는 별 도움이 안 됩니다. 사실 신체구조도 다르고 전투법도 다른데 그걸 붙여 놓는다고 강해질 리가 없지요. 인간의 육신보다는 오쿠거의 육신 쪽이 더 강하기 때문에, 아이거는 거의 언제나 오쿠거의 발목을 잡고 있습니다. 오쿠거는 아이거를 덜 자란 아이로 이해하며, 부성애 가까운 감정까지 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특정 상황에 처해서는 정 반대가 됩니다. 오쿠거는 야수이며 본능에 충실합니다. 그렇기에 죽음의 신, 그 사제인 키나를 대할 때 오쿠거의 심장은 오그라듭니다. 아이거는 인간이기에 명백한 죽음을 느껴도 억누르고 싸울 수 있지만, 오쿠거는 그렇게 할 수가 없어요.
광기와 전쟁의 신을 섬기는 신관들을 만났을 때도 오쿠거는 민폐를 끼치게 됩니다. 강한 자를 알아보는 야수의 본능 때문에 계속 경계하고 신경질적이 되지요. 반면 대지의 신을 섬기는 신관 앞에서 오쿠거는 말 그대로 순한 고양이.
떨어질 수 없는 사이, 다양한 반응과 표정, 쉽게 드러내지 않는 따뜻한 애정, 이것이 바로 眞 히로인! (..) 이라는 건 농담이지만, 오쿠거라는 존재가 아이거에게 가장 중요한 상대역인 것은 사실입니다. 키나가 스승/신관이라는 역할 때문에 어느 정도 독자에게서 떨어져 있게 되는 것과 달리, 후천적 샴쌍동이로서 함께 하며 같이 사건을 겪어나가니까요.
마지막 장면에서 아이거가 처한 딜레마가 그를 괴롭힐 때, 아이거를 구하는 것도 역시 오쿠거입니다. 이 부분이 유쾌하고 근사한데다가, 바로 이 덕분에 이야기는 해피엔딩으로 이어집니다.
포커스가 잘 안 돌아오는 느낌은 있지만 역시 眞 히로인(..).
해피엔딩
이 이야기는 해피엔딩입니다.
‘어떤 의미로는 해피엔딩’ 같은 거 아니고, 그냥 해피엔딩입니다.
‘그 후로 그들은 오랫동안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처럼 이야기 하는 것은 작품 특성상 절대 무리지만, 등장인물들은 살아가기로 결심하고, 이 순간을 행복하게 여기게 됩니다. 이 작품에서 용납할 수 있는 최대한의 행복을 맛본다 해도 좋습니다.
물론 죽은 사람이 글을 쓰는 게 아닌 한, 모든 이야기는 삶에 대한 것일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면 결국 삶에 대한 이야기가 된다는 것도 같은 맥락이고요. 그러니까 등장인물의 죽음으로 끝나는 이야기가 반드시 불행한 것이라고 말할 정도의 해피엔딩 매니아는 아닙니다.
하지만 이쪽의 만족도가 훨씬 큽니다.
초반부에 묘사되는 투기장의 숨 막힐 정도로 진득거리는 느낌, 두려워하고 겁내면서도 필사적으로 발버둥치는 싸움에서 전해오는 절박함과 처절함, 아이거의 과거가 조금씩 드러나면서 느끼게 되는 애처로움과 안타까움이 글을 읽으면서 쌓여왔기 때문이겠지요. 아무래도 슬픈 결말이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 불안했기 때문에, 그만큼 더 달게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찰나刹那 찰나刹那 줄어드는 목숨.
그럼에도 인간은 눈앞의 단맛에 모든 것을 잊는다.
그것이 인생人生.
이라고 작중에서는 이야기하고 있지요. 부정적 의미와 긍정적 의미 모두로.
마음에 걸리는 부분들
대부분은 본문 내에서 이야기했고, 장점과 단점은 ‘특징’의 양면으로 함께 붙어 다니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다시 한 번 정리해봅니다.
1. 1권 표지가 매우 불만입니다(..). 저는 지나치게 선정적인 것만 아니라면 표지에 불만을 갖지 않는 편입니다만, 이건 좀 무서워요(..). 2권은 괜찮습니다. 역시 가장 무서운 것은 인간! (..) 표지에 인물화가 들어가는 것 자체를 꺼리는 분도 꽤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2. 어둡습니다. 병적이고 혼란스러운 초반 투기장의 묘사는 특히나 제 취향이지만(..), 거부감을 느끼실만한 분도 상당히 많을 것 같습니다. 그 외의 전투장면도 대부분 발버둥 친다는 느낌이기 때문에, 통쾌한 느낌과 상당한 거리가 있습니다.
3. 사건들의 유기성이 약하게 느껴집니다. 아이거의 과거를 제외한 하나의 축은 흑마법사 하인리히와의 싸움과 연결되어 있는데, 아이거가 이 사건에 대해 주도적으로 끼어드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조금 거리감이 있어요.
그 외의 단상들
1. 책 중간에 컬러 삽화가 들어 있습니다. 다음에서 연재 시에 사용했던 삽화들 같은데, 이렇게 들어 있으니 고맙네요. 인물들이 대부분 작게 처리되어 있긴 하지만, 여기 보이는 아이거는 별로 안 무서운데 표지에서는 왜 (..)
2. 책갈피는 어디 쓰면 좋을지 잘 모르겠습니다. 잘못 쓰면 다칠 것 같아요.
3. 전쟁신의 사제님들과 치유신의 사제님들이 너무 멋있습니다.
4. 작중에서도 나오지만 죽음의 신 데스가움은 의외로 유쾌한 신인 듯. (..)
5. 데스가움의 사제가 되는 순간부터 나이를 안 먹는다고 합니다. 미소년/미소녀 사제를 대거 확충하여 교세확장 이룩하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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